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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가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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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200회 작성일 20-01-1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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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블라인드 건설엔지니어

새로 온 직원은 인턴이었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입사 후 그룹 교육을 할 때면 타 계열사 여자 신입사원들도 많고 각 계열사끼리 묶지 않고 섞어놔서 OT도 즐거운 마음으로 했었다. 그리고 회사 OT때는 시커먼 것들끼리 앉아서 재밌는 강의를 들어도 낮은 중저음의 허허허허 소리만 들리는 그런 공대 비스무리한 집단생활이었다.

 

학교 다닐때를 돌이켜보면 동기 중 여자동기는 몇 안되었고 다들 알다시피 공대의 여신들이 되어 눈이 높았었다. 동물의 왕국도 많이 찍었고.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도 파격적으로 여자 직원을 삼개월 인턴으로 채용했고 이 여직원들의 적응유무 그리고 현장에 투입해도 되는가 면밀히 관찰이 되는 모르모트 신분으로서 적응을 잘 하면 건축으로 여직원을 뽑는 그런 파일로트 형식의 인턴 채용이었다.

 

그렇게 또다른 김기사는 우리 현장에 인턴으로 오게 되었고 소장님이 현장 보내지 말고 공무팀에서 일하게끔 배려?를 해 주었다.

 

김기사는 보통키에 커다란 안경을 쓰고 항상 포니테일 머리로 회사를 다녔다.

현장에 있던 유일한 관리여직원과 서스름 없이 친하게 지냈고 이로써 현장에는 청소 아줌마를 포함해 세명의 여성이 현장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고 셋은 꽤 서로 수다도 떨며  친하게 지냈다.

 

매주 인사팀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적응은 할만하냐 어떠냐 안부를 물었다고 했고 공무팀에서는 어차피 인턴이기에 ERP상의 단순 숫자입력 이외에는 업무를 시키지 않았다.

 

김기사는 그것이 불만인지 인사팀과의 전화에서 자기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하고 싶다고 의사표명을 했고 소장님은 본사로 불려들어가 약간 혼나고 오셨다.

 

소장님은 김기사를 공사팀으로 보내기로 했으며 콤비로써 일을 딱딱 하던 일공구보다는 이공구가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셨는지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공구로 왔다.

 

김기사가 현장에 와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모두가 말조심을 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게 나름 아쉬웠다.

 

항상 점심을 먹을때마다 입재간이 좋은 안전팀장님이 19금 섞인 경험담과 농담을 하며 좌중을 웃겼는데 난 정신없고 힘든 상황에서 그것이 매우 좋았다. 아재개그도 웃기고 각종 적나라한 19금 용어를 써 가며 성대모사를 하는데 깔깔대고 웃고나면 하루의 절반을 찍은 것 같고 오전의 스트레스가 날라간 것 같이 진심으로 너무 좋았는데 김기사의 등장으로 밥먹는 시간은 정말 건전한 얘기들만 했다.

 

안전팀장님은 밥을 먹으면서 아쉬운 듯이 에이.. 하아.. 그게.. 하면서 말하는 중간에 계속 끊겼고 결국에는 혼자 파하하하 웃으시고는 머쓱해하셨다.

 

주간회의를 할 때도 가끔 험한 말을 섞던 소장님도 언어순화를 했으며 그 점은 참 좋았다. ㅋㅋ

 

이과장은 인턴 김기사를 직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조만간 갈 것을 뭐하러 잘 해주냐는 생각이 많았으며 나 또한 인턴이 곧 채용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업무만 주었다

 

일일 작업일지나 물량산출 복사 이런것들만 시켰고 그러던 어느 날 김기사가 자기도 현장 뛰고 싶단다.

 

"아.. 현장은 좀 거칠고 해서 혼자 뛰는건 아닌 것 같고.. 나 나갈 때 같이 나가자."

 

그로부터 현장 나갈 때마다 나를 졸졸 따라다녔고 나는 누군가가 나를 따라다니는게 큰 부담이었다.

나도 일을 잘 몰라서 배워가며 싸워가며 일하는데 내가 누굴 가르칠 입장도 아니고..

 

현장에 나가면 작업팀들은 눈을 흘끗거리며 여직원의 존재에 대해서 신기해했고 나름 귀여운 상인지라 인기도 많았다.

 

감리 토목이사도 김기사가 나를 따라 쫄쫄대며 다니는 것을 기특해했고 주로 자기의 무용담을 섞어 검측은 뒷전이고 둘이 얘기하느라 바빴다. 덕분에 검측도 화기애애한 과정 속에서 금방 금방 끝냈고 이 점은 정말 좋았다.

 

또한 계속되는 이과장과의 술자리도 좀 진절머리 난 터라 난 인턴 김기사를 꼬박꼬박 같이 데려갔고 능글맞게 웃으며 같은 이공구인데 따로국밥이 말이 되느냐며 항상 챙겼다.

 

이과장은 천상 여자없으면 못 사는 스타일이긴 한데 김기사가 직원이란 것에 부담을 느꼈지만 놀랍게도 김기사는 술자리에서 이과장의 얘기를 꼬박꼬박 들어주며 추임새를 넣었고 그 얘기가 어제 한 얘기여도 새로 들은 것 처럼 맞장구를 쳐 주었다.

 

이과장은 이런 김기사를 너 참 잘한다 너같은 사람 없다하며 술자리에서는 이뻐했지만 다음 날 출근하면 그 감정들은 리셋되는지 일할때만큼은 인턴을 배제하거나 나에게 모든 업무 지시를 했다.

 

한달여 지나고 김기사는 제법 사무실 사람들하고 친해졌으며 여성이라는 무기?로 모든 직원들의 관심과 총애를 받고 있었다.

 

오랜만에 일공구와 함께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임기사가 술이 쎈데 생각보다 일찍 취해서 얼굴이 벌겋다.

 

"김기사님 담배 한대 펴요~"

 

임기사는 나를 데리고 삼겹살집 앞으로 끌고갔고 줄담배를 뻑뻑 피더니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김기사님.. 나 사실 인턴 좋아하는거 같은데.. 어찌해야 할까요?"

 

난 농담인 줄 알고 네 나도 좋아요 하고 깔깔 웃었는데 임기사는 진지빨고 얘기를 이었다.

 

"아니!.. 농담 아니고 진짜 좋은데. 김기사님은 여자친구도 있어봤고 연애도 많이 해봤을거잖아요. 난 그런게 없어서 어떻게 할지 몰라서 그래... 도움좀 줘봐요."

 

나는 나 학교 다닐 때 CC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결국 동물의 왕국을 찍고 결말이 좋지는 않더라 라고 애기해주고 좋아하는건 좋은데 일단 시간을 두고 인턴의 입장도 알아봐야 할거 아니냐고 조언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병신같은 조언이지만 임기사는 알았다고 하면서 그 날 이후로 인턴에게 농담도 건네고 일도 알려주고 나에게 와서 좌표찍는데 사람 필요하다면서 인턴을 자주 데리고 현장으로 나갔다.

 

난 당시 꼬리처럼 따라다니는 인턴이 부담스러워 그럴 때마다 오케이 하며 인턴을 보내줬고 아무것도 모르는 인턴은 그저 현장 나가서 다닌다는게 좋아서 쫄래쫄래 따라나갔다.

 

인턴 김기사는 친화력도 왕인데다가 이제 갓 대학교를 졸업한 파릇파릇한 새싹이었고 비단 임기사 뿐만 아니라 안전팀 그리고 전기 대리 등 노총각들은 숨죽여 인턴의 동선을 살피고 껀수를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 중이었다.

 

난 헤어진 여친이 압도적으로 이뻤기 때문에 눈길조차 가지 않았지만 모두가 김기사 김기사를 해가며 총애를 하니 아니 뭐가 저리 이뻐서 좋이들 하지.. 하고 단순 파충류처럼 생각했었다.

 

저거 저거 눈웃음 치면서 여러 직원들 홀리네.. 하고 수가 다 보였지만서도 싱글들은 어쩔 수 없었다.

 

토공사 공정이 얼추 끝나가고 골조업체 그리고 철골업체가 선정되어 추가 컨테이너가 들어오고 새로운 업체가 현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과장은 현설 시 반영해놓았던 아이템들을 하나씩 꺼내어 업체들과 협의를 했고 잘 모르는 나는 가끔 회의의 참석하면 이과장의 진행능력을 보고 감탄을 하곤 했다.

 

당시 현장에는 ACS 폼을 써 본 사람이 소장님 공사팀장님과 이과장 셋밖에 없었고 그 중 이과장은 직접 조립부터 해체까지 경험해봤던터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협의를 진행했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계획을 세우고 업무를 추진해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 몇이 현장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감사팀이랬다.

 

현장 직원 모두들 무슨 일인가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공무팀장과 소장님은 감사팀과 얘기를 하더니 회의실로 이과장이 불려갔다.

 

한참을 지나도 회의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곤 공사팀장님이 같이 불려갔으며 저녁쯤이 되서 이과장은 회의실에서 나왔다.

 

얼굴이 잿빛이 된 모양새가 뭘 물어볼 분위기도 아니었고 이과장은 한숨만 푹푹 쉬었다.

 

저녁식사를 묻는 나의 말에 안먹어. 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리곤 다시 회의실로 불려가 그날 밤새도록 있었던 것 같다.

 

다음날 출근해보니 이과장이 안보인다.

다들 쑤근쑤근 거리며 무슨 일인가 서로 묻는데 팀장님은 말이 없었다.

 

점심시간에 박과장이 슬쩍 물어본다.

 

"이과장이랑 매일 술먹었니?"

 

"예. 거의 매일이었죠...근데 무슨 일인가요?"

 

"음... 너 혹시 일차에서 술마시고 이차 간 적은 없지..? 룸싸롱이라던가.."

 

"네 그.... 옛날 회식하고 채대리 있을 때 한번 간 적은 있었어요."

 

"혹시 너를 불러 물어볼 수도 있는데 넌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데 간 적도 없다고 하여라."

 

난 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옛 생각이 나면서 혹시 이과장이 뒷돈을....?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마..라며 그렇진 않을거라 생각했다.

 

당시 공구장에게도 회의비 식의 회식비가 좀 나왔었고 우리가 늘 먹는 곳은 현장에서 지정된 삼겹살집에서 술먹었을 뿐인데...

 

오후에 감사팀에서 날 불렀다.

 

커다란 회의실에 마주앉아 나를 보고 서류들을 검토하며

 

"이번에 들어왔네? 학교는 여기 나왔구나?"

 

"네!"

 

"너 왜 여기 앉아있는건지 알어?"

 

"아니요.. 잘.. 모르겠습니다."

 

협력업체한테 금품수수 한 적이 있냐 물었고 그런일은 없다 했다.

 

"너 맨날 이과장이랑 술 먹었잖아. 이과장이 다 불었어."

 

잉? 무슨 말이지?? 거의 매일 술 마셨다고 솔직히 대답했다.

 

"술마시고 그리고 어디갔어?"

 

술마시고 항상 똑같은 레파토리로 취하고 집에 데려다주고 나도 집에 갔다. 그리고 난 지금까지 술먹고 지각한 적이 없다. 라고 당당히 말했다.

 

"이야 이 신입새X가 아주 미쳤구만. 똑바로 말 안해? 너 임마 거짓말하면 당장 해고야 임마."

 

억울했다. 뭘 말하라는 것인가...?

 

첫 대면때 웃으면서 친절하게 알려주며 A4에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라던 그들은 지금은 온갖 인상을 써가며 나에게 폭언을 하며 이과장과 이차를 간 것 횟수 어디 언제 등을 쓰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아니 가 봤어야 갔다고 하지 나도 지겨운 술자리 여자친구 잊으려고 술 같이 마신 것 뿐인데!!?

 

버럭 화가 나서 큰소리로 말했다.

 

"아니 뭘 쓰라는거에요! 하지도 않은걸 쓰라고 강요하면 처음에 저 서약서를 왜 저에게 쓰라고 줬습니까! 그런데 간 적 없다구요!!"

 

감사팀은 실실 웃으며 나를 보고는

 

"이새X 감사받는 태도가 글러먹었구만? 싹싹 빌고 잘못했다 해도 용서해줄까 말까인데 미쳤구나?"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와서 다그치니 더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씩씩대며 앉아있던 나를 보고는 됐다. 나가봐라. 너 곱게 끝나지 않을거다 라며 말했고 나는 의도적으로 회의실 문을 쾅 닫고 나왔다.

 

나오니 모든 직원들의 눈이 나에게 향했고 나는 자리에 앉아서 씩씩댔다.

 

박과장이 오더만 나를 데리고 내려가서 담배 한대를 권한다.

 

그리곤 자초지종을 얘기해줬다.

 

토목업체 과장이 그만두면서 소장과의 불화가 있었고 임금 미지급 건으로 노동부 신고 하면서 이과장을 회사 감사팀으로 찔렀다고 한다.

 

허위수량산출 및 금품수수.

 

이과장의 집안이 어렵다보니 병원비를 부담하기에는 월급으로 감당이 안되고 대출도 이미 꽉 찬 상태에서 토목소장에게 돈을 빌렸고 과장은 그 차용증도 포함해서 감사팀에 찔렀다.

 

하... 그 개놈새끼. 생긴건 얼빵하게 생겨서..

 

감사팀은 현장을 떠났고 팀장님은 부하직원 관리 소흘로 경고 징계 그리고 이과장은 감봉 징계를 받았다.

 

토목 실행 소장님은 교체됐으며 업체 상무가 나와서 현장을 봤고 암선 위조건은 당시 만연해 있던 현장 비상금 조성 차원에서 이뤄진거고 소장님이 무마시켰다.

(지금은 이런일이 있으면 안되겠죠?)

 

팀장님은 말이 없었고 이과장은 지방현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래도 나름 잘 맞춰서 일 했는데 떠난다니 너무 아쉬웠다.

 

이과장 송별회 때 이과장은 팀장님 품에 안겨 어린애처럼 울었다.

 

그리곤 떠나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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