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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가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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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23회 작성일 20-01-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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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블라인드 건설엔지니어

엇!!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는 희미한 불빛만 있는 방 안이다. 코고는 소리가 심하게 들려 주위를 살폈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이 누워서 자고 있다. 

아 여기 어디지.. 어제 과음을 심하게 했는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여섯평 남짓한 곳에서 일어나 보니 난 가운을 입고 있었고 알몸이다.

 

앗.. 여기 혹시 안마방?

 

번쩍 정신이 들면서 벌떡 알어났다.

 

벽에는 옷걸이에 옷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고 난 내 옷을 찾아서 주섬 주섬 입었다.

 

문을 살짝 열고 나가니 화려한 조명이 있는 홀이 있고 누군가가 바쁘게 나에게 다가왔다.

 

"형님 그냥 가시려구요?"

 

난 머뭇거리며 네? 하고 물었고 어제 너무 취해서 들어오셔서 샤워만 하고 잤다고 상대방이 대답했다.

 

"십오분 후면 아가씨 준비되는데 기다리시죠. 같이 온 일행분은 어제 서비스 받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아침이라도 차려드릴까요?"

 

짧은찰라 여자친구와의 사랑도 두달이 넘었고 아이 모른척 하고 함 저질러? 라는 맘이 들었지만 뿌리치고 그냥 가겠다고 했다.

 

"그래도 그냥 가시면 안되는데..."

 

난 일행에게 나중에 물어보면 했다고 얘기해달라 하고 나왔다.

카운터에 앉아있던 껌을 씹고 있던 아저씨가 뭔 저런 호구가 다 있나 싶게 쳐다보고 있었다.

 

밖은 벌써 밝아왔고 택시들이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몇시인지 궁금해서 주머니를 뒤져보니 휴대폰이 없다!!

 

아 이러면 나가린데..(신세계 최민식 목소리)

 

다시 안마방에 가 카운터에 물었다.

 

"어제 충전해달라고 맞긴 휴대폰이 이거요?"

 

여러개의 휴대폰 중 낯익은 하나가 보인다. 아 내꺼.

 

"감사합니다"

 

"어젠 멀쩡히 들어온거 같은데 기억을 못하우?"

 

그러게. 기억이 하나도 안난다.

 

휴대폰의 전원을 키니 시계는 여섯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부재중 전화가 스무통이 넘게 와 있었다.

 

집에서 다섯통 그리고 나머지 열다섯통이 여자친구.

 

새벽 세시까지 십여분 간격으로 부재 중 전화가 와 있었다.

 

아.. 좆됐다...

 

문자도 와 있었다.

 

[오빠 술 많이 마신거 같은데 어디야. 걱정되게. 설마 이상한데 있는거 아냐?]

 

휴대폰 폴더를 닫고 주머니에 넣은 채 잠시 방향설정을 하고 현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쩌지..

 

현장은 새벽상차로 앞사바리가 분주히 게이트를 통과하고 있었고 상차담당 업체 직원의 경광봉이 빠르게 반짝인다.

 

경비실을 통해 사무실에 도착하니 여섯시 조금 넘었다.

 

아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떡하지..

 

일단 집에 전화를 하니 엄마가 급하게 받고는 여보세요? 한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현장 숙소에서 잤다고 하니 엄마 밤새 잠도 잘 못자고 걱정되셨단다.

 

엄마 죄송해요. 오늘 집에 일짝 들어갈께요.

 

이제 여자친구 전화가 남았다.

 

일단 전화보다는 문자를 먼저 하자.

 

[그러게. 어제 너무 과음해서 현장숙소에서 바로 뻗어서 잤어. 이제 막 출근했어. 미안]

 

문자를 보내자마자 여자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오빠.. 나 어제 잠 한숨도 못자고 오빠한테 전화했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께. 진짜 숙소에서 잔거 맞어?"

 

여자의 촉은 무서웠다.

 

"어 그래 맞어. 숙소에서 잤어."

 

"근데 왜 지금 출근해? 오빠 여섯시반 넘어서 현장 도착하지 않아?"

 

집요하게 캐묻는다.

 

"알람소리에 깼어. 현장하고 숙소가 가까와서 좀 일찍 도착했어."

 

"알람소리를 듣는 사람이 내 전화는 못 들어? 진심으로 숙소에서 잤어?"

 

하 뭐지.. 어제 누가 여자친구한테 전화했나.

 

아니라고 잡아땠다. 너가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곳!은 안갔다고.

 

"내가 오빠랑 만난지 사년이 넘었어. 오빠가 거짓말 하는지 진실을 얘기하는지 다 알아. 난 오빠가 나한테 사실을 말해줬으면 해."

 

끝까지 잡아떼야 하는데 갑자기 취기가 다시 오르고 멍청한 나는 여자친구에게 그래 나 안마방 갔다. 근데 그런거 안하고 잠만자다 왔어 라고 진짜 진실을 얘기했다.

 

"...오빠.. 정말 실망이야..."

 

여자친구는 전화를 끊었고 아니 이게 뭐야 지가 진실을 얘기하래서 진실을 얘기해줬건만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갔다. (하.. 지금 생각해보면 상병신이다. ㅜㅠ)

 

다시 전화를 했는데 안받는다.

뭐 난 사실을 얘기한거니까 나중에 오해를 풀면 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아침 조회를 하고 일과를 시작했다.

 

순간순간 욱 하고 취기가 올라오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어스앵커의 큰 소음은 내 뇌 전체를 들썩이게 했고 만사가 다 귀찮다.

 

아침을 대충먹고 나니 이과장이 출근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시작하더라.

 

채대리는 전화도 안받고 출근도 안했다.

가뜩이나 어지러운데 검측도 있다.

 

정신줄 부여잡고 하나씩 정리해나갔다.

다들 멀쩡해보이는데 나만 괴로운가.

 

어렵게 어렵게 미션 하나씩을 클리어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난 점심먹는대열에서 이탈해 처음으로 당직실로 갔다.

쾌쾌한 노총각 냄새가 코를 찌르는 숙직실에 누웠다. 이불은 생전 빨지도 않은것처럼 온갖 냄새가 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니 포개서 자고 있던 안전팀과 임기사가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안전 황대리가

 

"김기사 너 어제 술 엄청먹었나보더라? 근데 안마는 잘 받고왔어?"

 

"헉.. 누가 그래요..?"

 

"이과장님이 점심먹으면서 너 어제 호강시켜줬다고 그러던데?"

 

아 이 썩을놈..

 

주섬주섬 준비하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니 채대리가 출근해있다.

 

채대리도 아무렇지도 않게 업무를 하고 있었다.

 

오후도 엄청 길었다. 여섯시를 넘어 채대리가 찌뿌리고 있는 나를 보더니 들어가라 야간작업은 자기가 보마 라며 배려를 해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이과장에게 보고하려 뒤를 돌아보니 자리에 없다.

 

"일찍 들어가셨어. 너도 어서 들어가. 어제 고생 많았다."

 

난 꾸벅 인사를 하고 출퇴근용 운동화를 신고 현장을 나섰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북어국을 내주셨고 국물 한방울까지 안남기고 다 먹었다.

 

그걸 지켜보던 아버지는

 

"직장생활 힘들재. 첨에는 다 그래. 그래도 엄마 걱정 안하게 외박할꺼면 집에다 전화는 꼭 해. 엄마가 걱정하잖아."

 

알겠다고 하고는 방에 누웠다.

 

자리에 누으니 잠이 오기는 커녕 숙취가 풀리면서 어제의 기억들이 조각이 되어 하나씩 등장했다.

 

내가.. 음.. 안마방 입구에서 안간다고 했지.. 이과장이 화를 내며 그래.. 날 대가리박아 시켰다.. 아 썩을놈. 안갈라고 대가리 박았는데 채대리가 일으켜세워서 오늘은 자기 기분좀 맞춰주라고 했고 난 못이기는척 계단을 올라갔다..

 

같이 샤워를 하고 둘은 뭐가 좋은지 낄낄대며 서로의 몸을 가르키며 낄낄댔고 나도 같이 낄낄대며 샤워를 하고.. 쇼파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셨지. 그리곤 휴대폰을... 아.. 아냐. 휴대폰은 입구에서 충전가능하냐 물으면서 줬지. 밧데리가 없다고.

 

밧데리.. 아.. 밧데리? 어??

 

통화목록을 열어서 봤다.

 

어!!

 

어제 이과장하고 채대리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며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했었나! 

통화기록이 이분???

 

이 때 내가 무슨말을 했지?

 

아..

 

이제서야 심연 저 밑에 가라앉아있던 기억 조각이 떠올랐다.

 

내가 여자친구랑 사랑한지도 두달이 넘어가고 나도 남잔데 너무하는거 아니냐. 나 이러다 오늘 확 사고친다.. 이런식으로 말했고 여자친구는 묵묵히 듣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나..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다. 아홉시 좀 안된 시간인데.

 

계속 전화를 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휴대폰 전화기 밧데리를 뽑았을 때의 안내멘트가 나온다.

 

 

하.. 어쩌지.. 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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