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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가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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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188회 작성일 20-01-1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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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블라인드 건설엔지니어

이과장과 채대리와 함께 이과장 차를 타고 현장을 나섰다.

 

현장 인근 조금은 누추해보이지만 맛은 그럭저럭 있던 삼겹살집으로 향했고 도착해서 여자친구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안에 들어가니 이미 고기를 주문했고 채대리는 암말도 없이 앉아 이과장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래.. 채대리는 말이 참 없었다. 메신저를 통해 동기들과 가끔 연락하는데 한 동기는 자기 바로 윗 고참이 공채 사수라서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고 아주 좋았다고 한다.

 

공구가 달라서인 것도 있지만 채대리는 말이 없는 편이었고 이과장과 채대리 둘 사이는 군대와 같았다.

 

가끔 이과장은 사무실에서 채대리에게 큰소리로 면박을 주었고 채대리는 그저 묵묵히 서서 이과장의 잔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골이 난 것처럼 잔소리가 끝나면 다시 자리에 앉아 표정 하나 안변하고 자기일을 계속 했다.

 

소주가 먼저 나왔고 이과장은 멋드러지게 소주병을 흔들고는 뚜껑을 따고 술의 독기를 뺀다면서 대가리를 양손가락으로 탁 쳤다.

그리곤 한잔씩 가득 채워주며 김기사를 진작에 한잔 사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했었는데 오늘은 맘껏 먹으라며 건배를 하고 원샷을 했다.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근처에 있노라 했다. 불나케 마중을 나가서 보니 오랜만에 데아트라 그런지 이쁜 원피스를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직장 동료들을 처음 만나는데 빈손으로 가는게 아니라 뭘 좀 사가야 하는거 아니냐고 여자친구가 물었고 오늘 격식 따지는 자리는 아닌 것 같으니 그냥 가도 된다며 여자친구를 데리고 삼겹살집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오! 우와 미인이시네! 우리 김기사가 일도 잘하면서 능력도 있네!! 반갑습니다! 전 김기사 고참 이XX과장이라고 합니다!"

 

여자친구는 수줍게 인사를 했고 채대리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고기를 열심히 굽고 있었다.

 

이미 두병째를 향해서 가고 있었고 늘 그렇듯이 이과장은 약간 취기가 올라오면서 말이 많아졌다.

 

자기의 무용담이라고 들려주는데 진짜 재미 하나도 없었고 그렇게 묵묵히 이과장만 떠드는 분위기에서 깨작대며 삼겹살을 줏어먹고 서로 소주를 따라주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이과장은 소주잔을 들어 원샷을 하더니 잔돌리기를 하는데 여자찬구에게 바로 내민다.

 

방금 먹은 삼겹살 기름기가 가득 묻어있는 소주잔을 사양치 말고 받으라고 건네주고는 소주 한잔을 가득히 따라준다.

 

"어서 원샷 하세요! 흐흐 어잉? 원샷 안하면 앞으로 김기사 회사생활 힘들어질지 몰라요 하하하!"

 

원래 술을 잘 못하던 여자친구는 나를 좀 원망섞인 눈으로 쳐다보았고 나 또한 뾰족한 수가 없는지라 일단 마시라고 눈치를 줬다.

 

여자친구의 입술이 이과장이 먹던 삼겹살 기름끼 잔뜩 묻은 소주잔에 닿고 그렇게 소주는 천천히 여자친구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하! 잘 마시시네!! 에이 원래 주랑이 쎄면서 김기사한테 잘 보이려고 약한척 한거 아니었어요? 오늘 그 주량 확 열어드려야겠다 이모! 여기 소주 한병 더 아니 두병 줘!"

 

여자친구는 속이 거북한지 말없이 앉아 있었고 그 둘 사이에 낀 나는 난처해져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괜찮아? 조용히 물었지만 여자친구는 말이 없다.

데이트 한다고 안입던 드레스까지 입고 이쁘게 나왔는데 허름한 삼겹살 집에 앉아 머리가 약간 벗겨지고 배가 나온 사십대 중년의 과거사를 묵묵히 듣고 있는 처지에 화가 단단히 난 듯 하다.

 

난 신입이라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는데 채대리는 정말 말없이 웃지도 않고 고기만 굽고 먹고 마시고 그렇게 있었다.

 

"이름이 뭐라고 그랬나? 아 XX씨. XX씨는 김기사 만난지 얼마나 됐어요?"

 

"예.. 사년정도 됐어요."

 

"사년이면 볼장도 다 봤네? 이미 끝판까지는 갔을꺼고 결혼하겠네요?"

 

아... 이과장이 또 취해서 시작한다. 설마 여자친구에게 저렇게 나올줄은 몰랐다. 아 데리고 온 내가 바보 거절못한 내가 바보지.

 

다시 이과장은 자기 소주잔을 여자친구에게 내밀고 한잔 받기를 강요했다.

 

"저 진짜 술 잘 못해요..."

 

"어허! 선생님이라면서 눈치가 없으시네! 우리 김기사 회사생활 힘들게 해드려요?"

 

아 진짜.

 

"과장님 좀 많이 취하신거 같은데 오늘 이만 하시죠. 고기 잘 먹었습니다. 여자친구 집이 멀어서 곧 나가야 할 것 같네요."

 

"야 김기사. 어다서 고참 말하는데 껴들고 있어. 너 내가 우스워보이냐?"

 

여자친구는 눈을 질끈 감고 또다시 한잔 마셨다.

 

이 모습을 본 이과장은 저것봐 우와 잘마시네 역시 주당의 피가 내 첨 봤을 때부터 알아봤어 라며 혼자 주접을 떨었다. 그리고는

 

"둘이 결혼할거 같으면 내가 충고 하나 할께요."

 

라며 잔을 내밀어 여자친구에게 소주를 따르라는 듯이 재촉했고 마지못해 소주를 채웠다.

 

"이 노가다가요 엄청 거친 직업이에요. 그래서 남자들이 스트레스를 풀 일이 없어. 매일같이 야근하고 스트레스 받고.. 집에 잘 가지도 못해요. 그래서 결혼할거 같으니까 말해주는거에요. 노가다 하는 남자는 외도를 좀 해도 눈좀 감아주고 그렇게 살아야 해요. 그게 준비가 됐다면 결혼 하는거고.."

 

"과장님. 말이 좀 심하신거 같습니다."

 

구석에서 암말 없던 채대리가 한마디 했다.

 

"뭐 임마? 왜 말을 끊고 지랄이야 자슥이. 어디 하늘같은 고참이 얘기하는데 쯧! 그래서 남자는 그 화를 풀어야 하고 가끔 안마방도 가고 해요. 노가다 다 그래요. 근데 그게 사랑해서 바람피는게 아니라 원래 생리가 그러니까 이해를 해야 해요."

 

이런 개...

 

여자친구는 암말없이 듣다가

 

"과장님 초면에 좀 많이 무례하시네요. 저희 서로 신뢰가 있는 관계인데 제 남자친구가 그러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한테 왜 이런 얘기를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오늘 저녁 사주신거는 고맙지만 더 이상 이런 얘기 들으면서 있을 수는 없네요."

 

하고 가방을 들고 나가버렸다.

 

나 또한 암말도 않고 여자친구를 따라 바로 나갔다.

 

뒤에서는 잔뜩 취기가 오른 이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수씨! 하 거참 현실을 얘기해줘도 저런다니까.. 야 임마 채대리 넌 아까 왜 껴들어? 고참이 말하는데..."

 

빠르게 걷는 여자친구를 잡았다.

 

"알어. 오빠가 어쩔 수 없다는거. 주변에서 건설회사 다니면 퇴근도 늦고 바쁘다고 하는거 다 알어. 근데 오늘 꼭 이렇게 했어야 해? 그리고 오빠는 왜 아무말도 안하고 있는데?"

 

그르게. 나도 참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테이블을 뒤엎고 난리라도 치고 싶은 맘이지만 난 신입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내가 존경하는 박과장도 형님 형님 하고 따르는 마당에 어찌 그럴수가 있겠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 다시 돌아간다면 그냥 발로 밟아버렸을텐데 내가 그땐 왜 그랬지.

 

여자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지하철에서 우리는 아무말이 없었다.

 

원룸에 도착해서 여자친구는

 

"오늘은 그만 가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나를 앞에두고 차갑게 문을 닫았다.

 

집으로 가면서 아 난 오늘 왜 이렇게 병신같았지... 이과장은 왜 그런말을 했지... 아 오늘 진짜 최악이다..별별 생각을 다 하며 집아 도착해서 씻고 자리에 누웠다.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해도 안받고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다.

 

근데 여자친구는 배려심이 많으니 오늘일을 잘 이해해줄꺼야..

 

막연한 기대를 하며 잠이 들었다.

 

그 날 이후로 여자친구는 나에대한 의구심이 커져갔고 의처증 비슷하게 질문하고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저녁 여섯시가 넘으면 전화가 삼십분에 한통씩 올 정도로 계속 나의 위치를 확인했고 집에 빨리 들어가기를 종용했다.

 

박과장님하고 임기사랑 앞에서 소주한잔 할꺼야. 아니 그때 그 이과장 아니래도!!

 

술마시고 이차를 가서 바람을 필거냐고 계속 따져물었고 계속 그 때 일을 미안해하던 나도 폭발하고 말았다.

 

안!간!다!고!

 

제발 그런 의심하지 말고 좀 내려놓으라고!

우리 사이 사랑이 이것밖에 안되냐 내가 그런짓 할 사람으로 보이냐 화를 냈고 거짓말처럼 그날 이후로 여자친구는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었다.

 

화성에서 온 천상 남자인 나는 금성에서 온 여자친구가 이제 날 믿고 이해해준다고 생각했고 여자친구는 아마 이 때부터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나보다.

 

이과장은 그 때 일은 전혀 기억 못한 채 다음에도 한잔 같이 하자고 여자친구가 이뻐서 술맛 제대로 난다 꼭 같이하자라고 보챘고 난 속으로 썩어문드러지는 맘이지만 이제 갓 들어온지 얼마 안된 신입으로써 바보처럼 헤헤 웃으며 여자친구가 바쁘다는 핑계만 대고 있었다.

 

박과장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채대리의 송별회때 채대리가 술취해서 부하직윈 잘 좀 다독이라고 술김에 얘기했을 때 알게 되었다.

 

박과장은 묵묵히 듣더니 앞으로 그런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라. 그리고 이과장이랑은 내 허락없이 술먹지 마라. 시간이 지났지만 그 상황에 대해서는 여자친구 많아 위로해주고 잘못했다 해라 라고 조언을 해줬고 난 호기롭게 제 여자친구는 속이 넓어서 다 이해할거에요 라고 넘겼다.

 

이과장과 채대리아 대해 미리 얘기 하자면

 

그로부터 삼개월 후 이과장은 토목업체에게 지속적으로 금품수수를 한 혐의로 감사팀 조사를 받고 저 외딴 현장으로 좌천성 발령을 받았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했다.

그리곤 아무도 소식을 모른다.

 

채대리는 이런 건설문화가 지쳤는지 몰래 준비를 해서 공무원 7급에 합격했다. 

그리곤 지금 시설직  5급으로 잘 생활하고 있다.

 

여자친구는 정말이지 먼저 연락하는 경우가 없었으며 전화를 받으면 예전과 같이 잘 대해주고 그랬다.

 

다만 밤늦게까지 전화를 기다리는 일이 없었으며 아홉시 넘어서는 잔다고 안받았다.

 

그래 날 기다릴바에야 일찍 자는게 낫지. 가끔 조촐한 술자리 후 집에 가면서 전화해서 투정하는게 또다른 낙이었지만 뭐 이정도는 이해해줘야지 하고 넘겼다.

 

그게 그렇게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난 알아채지 못했고 여자친구의 원룸에 가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보다는 중간에서 만나 영화보고 차마시고 서로 헤어져 집에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데려다준다해도 오빠 일 힘든데 그럴필요 없다. 그러지 마라면서 마다했고 이때쯤부터 난 뭔가 변했다고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양가 부모님 인사도 다 드리고 원룸으로 이사할 때도 내가 솔선수범 짐도 다 옮겨줬는데 설마.. 하고 확신 반 불확신 반 알쏭달쏭하며 지내고 있을무렵 검측이 일찍 끝나고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오후 여섯시 좀 넘어서였을거다.

 

"여보세요? 딸링 어디야?"

 

여자친구는 아직 교무실에 남아서 일과 정리 중이라고 말했다.

 

"근데 왜 주변이 그렇게 조용해? 누구 있어?"

 

그 순간 굉장히 낯설은 소리가 수화기 넘어 들려왔다.

 

"띵동! 잠시 후 좌회전입니다."

 

!!!!!

 

여자친구는 자기 좀 급하게 정리해야 하니 나중에 전화를 한다고 끊었고 난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아니 교무실인데 왜 네비소리가 나지? 요즘 교무실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나..

 

어리버리한 나는 상황을 이해하는데 한참 걸렸고 꽤 나중에서야 그것이 차에서 나오는 네비 소리고 여자친구는 교무실이 아니라 누군가와 차를 타고 어디로 이동 중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에이 아닐꺼야. 나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어.

우리가 만난게 사년이 넘었는데 그리고 양가 부모님 다 알고 가끔 식사도 같이 하고 그리고 둘이 결혼하자고..뜨겁게 사랑했잖아?

 

꼴에 자존심인지 난 전화를 하지 않았고 그 날 여자친구의 전화는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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