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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가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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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202회 작성일 20-01-1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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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블라인드 건설엔지니어

임기사는 항상 바빴다.

단종회사에서 광파기 다루는 법을 배워 현장의 좌표를 혼자 다 찍고 다닌다.

일공구 뿐만 아니라 이공구 좌표까지 다 찍고 다니고 항상 부지런히 다니는 성격 탓에 잠시라도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프리즘을 들고 서 있는거였다.

 

벽돌같은 무전기를 지급받고 임기사에게 무전기 사용법을 새로 배웠다.

 

이등병시절 아버지군번에게 철모로 맞아가며 무전기 사용법을 배운터라 어렵지는 않지만 무전기 채널과 조루인 배터리가 문제였다.

 

"일번 채널은 전 직원이 공용으로 쓰는 채널이구요 항상 소장님이 들으시니 주의하셔야 하구요. 이번은 안전팀입니다. 나머지 채널은 나중에 타워크레인 설치하면 분배될 채널이구요."

 

임기사의 무전기는 조그맣고 무려 경찰 싸이카처럼 마이크가 별도로 있었다. 부러웠다.

 

임기사랑 채널 오번으로 고정한 후 현장 평면 하나를 들고 지정한 장소로 이동하면 무전으로 임기사가 시그널을 준다.

 

"김기사님 거기.. 스돕. 좌로 깔짝.. 깔짝.. 깔짝.. 스돕. 잠시대기."

 

무더운 햇살아래 프리즘을 수평으로 세우고 임기사쪽을 바라보며 무전기에 집중한다.

 

"오케이! 아까 말한 두번째 좌표로 이동하세요."

 

임기사와 같이 일하다보니 조금 친해졌다.

현장 밖에 같이 나가 콜라도 사먹고 어느정도 조금씩 개인얘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임기사님 우리 나이도 동갑인데 말 놓으면 안될까요?"

 

임기사는 살짝 웃으며 다음에 좀 더 친해지면... 이라고 단칼에 거절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정말 친해졌을 때 들었지만 그냥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고 한다. 군대에서도 나이 불문하고 먼저 들어온자가 선임인데 같은 기사라도 자기가 경력이 삼년이 많았기 때문에 나이가 같다고 말 놓자는 말이 싫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애초에 건설회사로 가려고 한 동기들은 준비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난 계속 설계만 하다가 사학년 이학기에 방향을 틀었기 때문에 건설 장비에 익숙치 못했다.

 

간혹 토목과 학생들이 거대한 삼발이를 들고 학교를 누비는 모습을 봤었지만 나중에 그 장비가 트랜짓이란걸 알았고 광파기란걸 알았다.

 

토목과니까.. 도시와 떨어져 도로닦고 다리놓는 애들이니 저런 장비에 익숙해야겠지.. 난 건축과니까 로트링 펜이랑 더 친해져야겠다는 정말 순진한 생각을 했었던 학창시절이 기억난다.

 

그 흔란 레벨기를 볼 줄도 몰랐고 이런 나를 두고 임기사는 조금 답답해했다.

 

임기사에게 레벨 야장 그리는 법을 배웠으나 익숙치 않아 헤맸고 일과시간 후 저녁을 먹고 현장 사무실에서 경비실까지 레벨을 따는 연습을 두어번 했는데 무려 일미터가 넘게 오차가 발생하기도 했다. ㄷㄷㄷ

 

민망하고 머쓱하기도 하고 혼자 야장을 보고 기계고 전시 후시.. 하... 그래도 나 군대 있을 때 관측병으로 포상휴가도 나왔는데 왜이렇게 당시에는 머리에 안들어왔었는지.

 

어느정도 레벨기가 익숙해질 무렵 임기사에게 광파기에 대해서 물어봤다.

 

"광파기는 음.. 정말 연습도 많이 해야하고 신중해야 해요."

 

트라이포드 세워서 물방울 수평 맞추는 것 자체가 레벨기와는 차원이 틀렸고 스테이션 온 후 숫자입력하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당시의 좋은 기회였는데 두어번 하다가 적성에도 안맞는 것 같아서 배움을 포기했는데 아직도 좀 미련으로 남는다.

 

금요일이 다가왔고 다음주에 온다던 컴퓨터도 좀 일찍 도착했다.

 

십칠인치 모니터가 책상위에 올라가니 이제서야 내 자리답고 직장인 같다.

 

임기사가 친절하게 네트워크 세팅을 도와줬고 공용 프린터 연결도 해줬다.

 

더불어 작업일지 그리고 각종 검측서류 출력등의 업무도 주어졌고 맨날 흙막이 도면만 보다가 임무가 주어지니 신이났다.

 

일과시간이 끝나고 여섯시 쯤 공사팀 회식이 있었다. 이공구 채대리가 당직을 섰고 나머지는 현장 인근 삼겹살 집으로 향했다.

 

발령을 축하한다는 사람들과 어울려 소주 한잔씩을 했고 첫 술자리인지라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바짝 정신 차리고 술 한잔 따라드리고 받으며 술잔을 비워갔다.

 

공사팀장님은 간만에 취기가 오르시는지 자기 과거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내가 리비아 병원 현장에 있었을 때 말이지..."

 

눈이 반짝반짝하게 듣고 있는데 주변 팀원들은 또 시작한다.. 라는 반응을 보인 채 묵묵히 얘기를 듣거나 자기들까리 건배를 하며 안주를 먹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나이때가 되면 말이 많아지는 것 같다.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건망증이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화려한 과거가 술기운에 잠금해제되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다녀온 군대가 가장 힘들다하지 않나.

 

기분좋게 한잔씩 걸치고 팀장님은 대리를 불러 먼저 가시고 남은 사람들끼리 이차로 맥주를 하러 갔다.

 

이공구 이과장은 이제 사십인데 배가 나오고 머리도 좀 벗겨졌다. 좀 게걸스럽다 해야 하나.. 식탐이 엄청 많은 듯 보였고 팀장님 가시자마자 말이 엄청 많아졌다. 마치 자기 차례라도 온 듯.

 

박과장은 술자리에서 주로 듣는 편이었고 이과장이 몇살 많은지라 형님 형님 하고 따랐다.

 

이과장은 신나서 혼자 얘기하다가 술이 좀 취했는지 나를 보며 정색하며 얘기했다.

 

"야 너 여자친구는 있냐?"

 

"네 있습니다."

 

"오~~~! 여자친구는 뭐하냐?"

 

"학교 선생님입니다."

 

"이야~~ 이새끼 완전 능력 좋네? 결혼 할꺼냐?"

 

많이 취했는지 입이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이를 보던 박과장이 껴들었다.

 

"아이 형님 다큰 성인끼리 이새끼 저새끼가 뭡니까? 하하하 형님 많이 취하셨네~~"

 

이과장은 혀가 꼬여 결혼을 하려면 자식아 자빠뜨리고 깃발을 꼽고 사고를 쳐야 한다는 둥 너처럼 멩하게 있다가 다른 선생이 채간다는 둥 좀 심하게 취해서 뭐라 했다.

 

겨우 자리를 끝내고 각자 헤어져 택시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으로 갔다.

 

나중에.. 이과장 때문에 헤어지는 일이 생기는데 그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당시 여자친구는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군대를 갔다와서 복학생으로 학교를 다니다가 운동 동호회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동호회 당시에는 둘 다 학생 그리고 임용고시 준비생이었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던 우리는 노량진역 앞 김밥천국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일반 연인들처럼 지냈다.

 

졸작한다고 학교 설계실에 쳐박혀 설계한다는 핑계로 매일 술먹고 널부러져 자던 생활 중 여자친구는 임용고시에 합격했고 그렇게 중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학교 선생님이 되어 수입이 생기고 우리의 식사는 좀 더 고급진 스파게티아 같은 곳으로 바뀌었고 여자친구는 집에서 좀 먼 중학교 선생을 했던지라 원룸에 자취를 했다.

 

여자친구는 나를 배려한다고 취업 독촉도 하지 않았지만 괜스레 나 혼자 조급해졌고 건설회사를 택해 좀 더 윤택한 삶을 살고자 했던 조급함도 같이 있었다.

 

내가 취준생일 때는 수업이 끝날때 맞춰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가 같이 퇴근하곤 했는데 건설회사에 취업하고보니 서로의 시간대가 달라서 쉽지 않았다.

 

매일은 아니지만 보통 오후 여섯시쯤 되면 여자친구는 퇴근을 했고 난 저녁식사를 하러 함바식당으로 향했다.

 

토요일은 단축수업이라 오후 두시가 되면 끝나지만 나에게 토요일은 평일과 다를바 없었다.

 

지금은 월 육일에서 칠일 쉬지만 당시에는 월 이틀 휴무였다...

 

신입이라 전화하는 것도 눈치보이고 시간대가 다르다보니 원룸에 혼자 살던 여자친구는 매우 그리고 많이 심심해했고 내 전화를 종일 기다리다가 지쳐 잠들기 일쑤였다.

 

저녁 늦게 퇴근하며 밤 열시 또는 열한시에 전화하면 자고 있거나 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건설사 취업을 축하해주던 여자친구의 목소리는 점점 날카롭게 변했고 나 또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답답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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