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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야설

어머니의 감나무 - 2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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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447회 작성일 20-01-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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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은 화장을 했다. 할머니가 그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마누라도 자식도 없으니 화장하는 것이 맞다고 하셨다. 엄마와 나는 반대했다. 작은 흔적이라도 남겨놓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겉의 흔적은 그저 흔적일 뿐이라며, 가슴에 묻으라 하셨다.



180센티가 넘는 건장한 체구를 자랑하던 삼촌이었는데 화장을 하고 나니 남는 것은 한줌의 재 뿐이었다. 허무하기 그지 없었다. 장례식은 치르지 않았다. 오직 구서방 내외만이 와서 거들 뿐이었다. 유골은 선산 할아버지와 아버지 묘 사이에 뿌렸다. 내가 유골을 뿌리는 동안, 엄마는 울고 또 울었다. 할머니는 몸 저 누워 산에 올라오지 못했다.



할머니의 병세는 더욱 깊어졌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생떼 같은 두 아들을 먼저 앞세운 어미가 어찌 멀쩡할 수 있겠는가?

일찍이 청상이 되어 두 아들을 키워냈다. 둘 다 잘난 아들이었다. 번듯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한자리 했을 아들들이었다. 큰 아들은 병으로 죽었다. 그래도 작은 놈보다는 다행이었다. 장가도 갔고, 자기 씨도 남겼으니 말이다. 그 씨를 보며 할머니는 지금껏 버텨 살아냈던 것이다. 작은 아들은 씨는 커녕 결혼도 못하고 허무하게 떠나버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내는 것이라고…

할머니의 삶은 정말 살아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억지로 ‘살아내는’ 삶을 지금껏 용케도 버텨왔건만, 작은 아들마저 허무하게 보내버렸다. 할머니는 그런 아들을 당신의 말라비틀어진 앙상한 가슴에 묻었을 것이다. 말라비틀어진 앙상한 그 가슴으로 온전하게 품기란 애초에 무리였다. 그렇게 할머니는 병들어갔다.



할머니는 삼촌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드시지 못했다. 스스로 곡기를 끓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엄마가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삼촌이 죽은 뒤 정확히 보름뒤에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삼촌을 떠나 보낼 때 그랬던 것처럼 엄마와 나는 할머니의 양손을 각각 부여잡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할머니는 화장하지 않고, 할아버지 산소 옆에 모셨다. 동네 사람들은 역시 오지 않았고 구서방네만 도와줄 뿐이었다.



할머니를 묻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엄마가 말했다.



“ 인제 우리 우예 사노? “

“ ….. “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법대에 당당히 합격해서 판검사 되고, 나쁜 놈들 다 썰어버린 후에 엄마 모시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종철에게 복수할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삼촌이 죽은 것도, 할머니가 죽은 것도 모두 놈의 탓이라 생각했다. 더불어 춘삼이 아제는 물론이고, 동네마을사람들까지 모두모두 삼촌과 할머니를 죽인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복수하고 싶었다. 유치하게도 어디서 기관총 같은 것을 구할 수는 없을까 고민했다. 싸그리 다 갈겨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뿐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종철이가 마을로 돌아왔다. 뻔뻔스럽기 그지 없는 놈이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분명 놈이였음에도 당당하게 얼굴을 쳐들고 마을을 돌아 다녔다. 곧 있으면 2차 사방공사를 진행한다며 떠들고 다녔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하여 복수하고 싶었다.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나와는 달리 엄마는 점점 어두워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 엄마, 삼촌, 나 이렇게 네식구 오손도손 살던 집은 적막강산이 되었다. 그나마 간간히 울리는 외양간의 암소 울음소리만이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대입고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건만 내 머리속에는 온통 복수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반면에 엄마의 우울증은 더욱 깊어졌다. 구서방네 아지매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할 정도로 엄마는 깊은 어둠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학교를 가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대입고사는 치지 못했다. 이 사단이 난 마당에 대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엄마마저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였다. 구서방네 아지매가 와서 엄마더러 제발 좀 정신 차리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했으나, 엄마의 눈동자는 점점 더 흐릿해져 갔다.



엄마의 병세가 깊어질수록 나의 복수심은 사라져 갔다. 우선은 당장 엄마를 살려야 했다.



날씨는 겨울로 접어들었다. 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엄마를 대구로 데리고 갈 것이다. 그깟 대학이 뭐 그리 중요하랴. 공사판 막노동을 해서라도 엄마 하나 못 먹여 살릴까…



이제 집안의 가장은 나였다. 의논할 곳은 구서방 아제밖에 없었다. 사정을 얘기하고 남은 밭떼기와 손바닥만한 땅을 내놓았다. 구서방 아제는 자기 일 인양 발 벗고 나섰다. 구서방은 마지막까지 집은 남겨놓자고 하였다. 대구로 이사가고 난 뒤에 팔더라도 늦지 않다고 했다.

논과 밭은 금방 팔렸다. 구서방은 제법 잘 팔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를 팔았다. 소는 구서방 아제가 샀다. 시세보다 10만은 더 얹혀주었다. 얼추 대구에서 단칸방 하나와 1년 정도의 생활비는 되겠다 싶었다.



어서 겨울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해 엄마를 사랑해줄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엄마는 회복될 것이다. 엄마와 삼촌이 그러했듯 나도 절망속에서 조금씩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12월 어느날 밤… 나는 안방으로 저녁상을 들고 갔다.

엄마는 모로 돌아 누워있었다.



“ 엄마~ 일나가 저녁 드시소… “

“……”

“ 엄마~ 고마 일나가 저녁 드시라카이~ “

나는 엄마의 어깨를 흔들었다.



“ 으응~ “

엄마가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났다.



“ 입맛 없겠지만 한술이라도 뜨시소… “



엄마는 내 얼굴을 보더니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 아이고~ 기후이 아부지~ 내가 늦잠을 잤지요? “



나는 어리둥절했다. 뜸금없이 아부지라니…



“ 어… 엄마? “

“ 삼촌하고 어무이 밥은요? 아이고 맞다. 내 지금 밥이나 먹고 이칼때가 아이네요. 기후이 젖 조야 되는데…. “



방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엄마의 눈동자는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뭔가 잘못되었다. 엄마가 이상하다.



“ 기후이 아부지… 기후이 어데 갔어요? 어무이가 데리고 갔어요? “

엄마가 멀뚱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 엄마~ 와이카노? 내가 기후이다~ 정신 채리소~ “

나는 엄마의 어깨를 붙잡고 거세게 흔들었다.



“ 아이고… 이 양반이 와이카노~ 이거 좀 노소~ 아푸니더~ “

엄마는 어깨가 아픈지 인상을 쓰며 내 손을 떼어 내려고 용을 썼다.



“ 엄마~! 내가 기후이라카이~!! 아부지는 돌아가셨니더~!!!!!! “

나는 소리를 질렸다. 하지만 엄마의 눈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 기후이 배고플낀데~ 야가 여 울지도 않노… 이거 좀 놔보소…. 내 기후이 젖 좀 주고 밥 먹어야 겠니더~ 혼자 먼저 드시소~ “

엄마는 기어코 내 손을 뿌리치더니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 엄마~!!!!! “

나는 소리치며 밖으로 나갈려는 엄마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 엄마~! 정신 좀 채리소~! 내가 기훈이다~! 엄마 아들 여 있다~! 흐흐윽~!!!! “

나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엄마가 미쳤다. 삼촌과 할머니의 연이은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그만 미쳐버린 모양이다. 아마도 엄마는 스스로 미쳐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가슴 찢어지는 아픈 기억을 잊을 수만 있다면 미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고왔고, 착했고, 현명했던 우리 엄마 이은혜가 미친 여자가 되어 버렸다.



“ 으아악~!!! 종철이 이 개새끼~!!!! 죽여버릴꺼야~!!!! “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소리 지르지 않으면 나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엄마는 내 고함소리에 놀랐는지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방구석으로 달아났다. 겁먹은 강아지 마냥 구석에서 온몸을 웅크리고는 오들오들 떨었다.



“ 으흐흑~! 엄마~ 엄마 마저 이카만 나는 우예 살라고카노~ 엉엉~!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굵은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는 엄마를 붙들고 나는 통곡하였다.









밤이 깊었다. 벽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문 밖에서 겨울 찬바람이 쌩쌩거리며 문풍지를 울려댔다. 건조하고 찬 겨울날씨였다.



엄마는 방금전에 잠들었다. 겁먹은 엄마를 달래고 달래어 겨우 밥을 먹일 수 있었다. 엄마는 치매걸린 노인네 같았다.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나를 아버지로, 또 삼촌으로, 또 죽은 외할아버지로 불렀다.



나는 그런 엄마를 포근히 안아주어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엄마는 내 품에서 잠들었다. 어스럼 달빛에 비친 엄마의 잠든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기분 좋은 꿈을 꾸는지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대로 엄마가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두 번 다시 미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엄마한테도 그게 오히려 좋을 것이다. 미쳤던 어쨌던 간에 지금은 행복해 보이니 말이다.



내 팔을 베고 잠든 엄마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팔을 빼내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방문을 나섰다.



겨울바람이 왱왱대며 귓볼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매섭게 불어댔다. 하지만 나는 그 바람과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창고로 갔다. 그리고 낫 한자루를 들고 나왔다. 가벼웠다. 내 분노의 무게에 비해 너무 가볍다고 생각됐지만, 딱히 마땅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창고 옆을 지나며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창고 옆은 장작을 패고 그 장작들을 쌓아놓은 곳이다. 그 곳에 도끼가 덩그러니 받침나무에 박혀 있었다.

장작을 패던 삼촌의 모습이 떠올랐다. 삼촌은 시간이 날 때마다 장작을 패서는 차곡차곡 쌓아두고는 그것으로 소죽을 끓이고, 겨울철 냉골방을 뜨듯하게 데웠었다.



하지만 이제 소죽을 끓일 일도 없다. 소가 없기 때문이다. 군불을 지필 필요도 없다. 엄마와 나는 곧 마을을 떠날 것이니 말이다.



덩그라니 박혀 제 할일을 못하고 있는 도끼는 우울해 보였다. 시퍼런 날을 번뜩이며 장작을 쩍쩍 가르던 옛 모습을 찾아달라는 듯 내게 손짓했다. 나는 낫을 버리고 도끼를 뽑아 들었다. 허공에 대고 두어번 휘둘러 보았다. 묵직한 것이 느낌이 좋다. 세상 어떤 것이라도 한방에 찍어 갈라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끼를 들고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집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안방을 보았다. 안방에는 지금 엄마가 곤히 자고 있다. 엄마가 절대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방옆에 붙어있는 작은 방을 보았다. 할머니가 자던 방이다. 지금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없다. 이 겨울 차가운 땅속에 계신다. 작년 겨울 깊숙히 감춰둔 곶감을 꺼내어 몰래 나를 주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외양간을 보았다. 작년 겨울 느닷없는 내 발길질에 놀라 어쩔 줄 모르던 암소가 생각났다. 그 암소도 이제는 없다. 구서방에게 팔아버렸다.



외양간 옆 삼촌방을 보았다. 지금 그 방에는 숙모도 없고, 삼촌도 없다. 엄마와의 사랑이 저 방에서부터 시작 되었는데… 방주인은 한 줌 재로 허공에 뿌려졌다.



그러고보니 1년사이에 우리집은 사라진 것이 너무 많았다.



눈에서 눈물이 맺히더니 주르륵 흘러내렸다. 떼가 낀 왼소매를 들어 눈물을 쓰윽하니 닦았다. 눈물 따위로 마음이 약해져는 안된다. 작두를 든 오른손을 꽉하니 움켜쥐었다.



‘ 엄마~ 내 금방 갔다 오께요~ ‘



산골의 겨울밤은 깊다. 새벽 1시까지 깨어 있을 사람은 없다. 나는 뒷마당으로 하여 집을 나섰다.



춘삼이 아제네 집은 우리집에서 약 1km정도 떨어져 있었다. 길을 따라 나서면 조금 더 둘러가야 하지만 우리집 뒷마당으로 이어진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면 곧바로 춘삼이 아제네다.



낮은 언덕은 거의 대부분 묘들로 채워져 있었다. 어릴 적 창수와 같이 이 산소 저 산소 뛰어다니면서 병정놀이며, 연날리기를 하던 놀이터였다.

추억 가득한 그곳을 지금 나는 푸른 빛이 일렁이는 도끼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언덕배기에 올라 우리집을 내려다 보았다. 겨울바람이 웽웽거리며 옷 속으로 파고 들었다. 교교한 달빛에 우리집 뒷마당 감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올해는 감이 별로 열리지 않았다. 원래 해거리를 조금씩 하는 감나무지만, 올해는 유독 감이 열리지 않았다. 감나무는 흡사 내게 손짓하듯 흔들렸다. 엄마에게 돌아오라고 손짓하는 듯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버리고는 이를 굳게 다물었다. 삼촌도 죽었고, 할머니도 죽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미쳤다. 내 삶의 전부였던 엄마가 미쳐 버렸다.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



곧장 언덕을 넘었다. ‘ㄷ’자 형태의 전통 기왓집 모양을 하고 있는 춘삼이 아제네 집은 내 가슴께 오는 기와담장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나는 담장을 훌쩍 뛰어 넘었다. 내 발자국 소리는 바람소리에 묻혀버렸다.



춘삼이 아제네 집은 고요했다. 널찍한 마당을 가로질러 사랑채로 다가갔다. 사랑채는 방에 총 세개였다. 어릴 적 종철이 방에 놀러간 적이 몇 번 있었다. 기억이 맞다면 오른쪽 첫번째 방일 것이다. 방문앞 봉당을 보았다. 세번째, 두번째 방문 앞에는 신발이 없다. 빈방이라는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첫번째 방문앞에 남자 운동화가 한켤레 놓여 있었다. 신발은 종철의 것일 것이다.



도끼를 단단히 움켜쥐고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보름이 가까워 오는지 둥그스럼한 달이 밝은 빛을 쏱아내고 있었다. 이 정도의 빛이면 충분히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심호흡을 했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하다. 손도 떨리지 않았고, 호흡도 안정돼 있었다.



한방이면 끝날 것이다. 양손으로 도끼를 머리높이 들어올려 온 힘을 다해 가슴께를 내리칠 것이다. 제대로만 내리친다면 놈은 비명 한마디 못 지르고 끝날 것이다.



다만 곧바로 즉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죽이는 사람이 누군지, 왜 죽이는지 똑똑히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너무 많다. 그만 생각하고 그냥 죽여버리자.

방문고리를 잡고는 천천히 당겼다. 방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찌그덕 거리며 방문이 서서히 열렸다.



훅하니 술냄새가 풍겨왔다. 조금 열린 문 사이로 방안을 살펴보았다. 방안에 종철이가 대자로 뻗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좋다! 죽여버리기에 더 없이 좋다!



이제 방으로 들어가서 도끼로 내려찍기만 하면 끝난다. 종철이도 끝나고 나도 끝난다. 간절히 바라던 끝남이다.



신발을 신은 채로 소리없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우두커니 서서 놈을 내려다 보았다. 술을 얼마나 쳐먹었는지 술냄새로 골이 띵할 정도였다.



‘ 개새끼! 니 놈 때문에 삼촌이 죽었고, 할머니까지 죽었다. 엄마는 미쳐버렸어. 너는 죽어 마땅해. 너는 사람이 아니라 개야. 한마리 개새끼야. 개새끼는 도끼로 찍어 죽여야 해! ‘



나는 도끼를 천천히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이제 내려치기만 하면 끝이다. 묵직한 도끼는 충분히 날이 서있고, 정확하게 놈의 심장으로 떨어질 것이다.



죽여버린다!



순간~



방안이 갑자기 밝아지며 놈의 몸위를 지나 벽까지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생겨났다. 그림자는 머리 높이 도끼를 쳐들고 있었다. 또렷한 그림자는 좌우로 일렁거리며 흔들렸다.



나의 그림자였다. 달빛 때문인가? 아니다. 달빛에 의한 그림자라고 하기엔 그림자가 너무 선명하다. 그리고 방안을 밝히는 빛이 붉다.



급히 뒤돌아보았다.

열린 방문 너머로 방금전에 내가 건너온 언덕이 보였다. 언덕 저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차가운 겨울 한밤에 왠 붉은 빛이란 말인가?

붉은 빛이 점점 강해지며 밤하늘을 환히 비치었다.



불이다. 불이 났다.



언덕 저편은 바로 우리집이다. 집에는 제정신이 아닌 엄마가 홀로 잠들어 있다.



‘ 어… 엄마! ‘

나는 도끼를 내리고는 종철의 방에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곧장 내달렸다. 마당을 가로지르고 단번에 담장을 뛰어넘었다.



건조하고 세찬 겨울바람은 무서운 속도로 불길을 이끌었다. 불길은 빠르게 언덕을 넘어 오고 있었다.



올 때는 언덕을 넘어 왔으나, 돌아갈 때는 그러지 못한다. 불길 때문이다. 길을 통해 돌아가려면 언덕을 넘어올 때 보다 두 배는 더 시간이 걸린다.

불길을 뚫고 언덕으로 갈까?

머뭇거리는 사이 언덕을 넘은 불길은 춘삼이 아제 집 코앞까지 다가왔다. 어쩜 이리 빠를 수 있단 말인가? 불길은 마치 춘삼이 아제네 집을 목표로 삼는 양 보였다. 좁은 폭으로 빠른 속도로 곧장 춘삼이 아제네 집으로 짓쳐 들고 있었다.



온당히 나는 ‘불이야~’ 하며 외쳐야 하나, 외치기 싫었다. 분명히 불은 춘삼이 아제네 집을 불태울 것이다. 그럴 것이기에 외치기 싫었다.



새벽 2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길에도 마을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화르륵 그리며 타오르는 불길 소리만이 사방 가득했다.



나는 언덕을 향해 달려나갔다. 불길이 제 아무리 거세다 할지라도 이 길이 가깝다. 불은 언덕 저편에서 시작되었다. 언덕 저 편에는 우리집이다. 지금 집에는 제 정신이 아닌 엄마가 잠들어 있다.



불길이 빠르게 다가왔다. 내 앞으로 짓쳐드는 불길을 향해 나는 마주쳐 달려 나갔다. 타오르는 불길을 보면 본능적으로 도망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건만 나는 본능을 이기고 불길속으로 뛰어나갔다. 훅하니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마른 섶불들이 타오르는 불길은 앞에만 거셌다. 앞의 불길을 뛰어넘으니 뒤에는 불에 탄 검은 흔적만이 남아있었을 뿐 불은 없었다. 천만다행이었다.



한달음에 언덕위로 올라섰다. 잠시 숨을 고르던 중 나는 뒤를 돌아다 보았다. 불길은 예상대로 춘삼이 아제집를 덥쳤다. 종철이가 자고 있는 사랑채는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불길은 사랑채에서 춘삼이 아제 부부가 자고 있을 안채로 번져가고 있었다.



“ 불이야~!! 불났다~! 아이고~ 우리 종철이 우야노~ 종철아~! 종철아~!!! “

잠에서 깬 춘삼이 아제 부부가 마당으로 달려 나와서는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 으아아악~! “

불이 붙어있던 방문이 떨어져 나가며 종철이가 비틀거리며 뛰어나왔다. 종철의 온몸은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말 그대로 불을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개새끼…

천벌을 받는구나. 삼촌과 할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간 놈… 죽어 마땅하다. 삼촌이 겪었을 고통에 비교할 것이 못되고, 할머니가 겪었을 울화통에 비견하지 못하다.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종철은 발버둥을 쳤다. 춘삼이 아제가 급하게 물을 퍼서는 종철에게 끼얹었지만 종철의 몸에 붙은 물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종철은 괴성을 지르며 온 사방으로 날뛰었다. 살이 타고 뼈가 탈 것이다. 삼촌도 화장을 하였으니, 종철이도 똑 같아야 할 것이다. 나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였고, 또 원망하였다. 이제 신의 존재를 믿으며, 또 감사하다.



버둥거리던 종철은 결국 쓰러졌다.



나는 미련없이 등을 돌려 집으로 내달렸다. 불꽃의 붉은 빛이 하늘로 뻗쳐 올라간 곳이 보였다. 그곳은 우리 집 쪽이었다.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더욱 달렸다.

제일 먼저 보여야 할 감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뒷마당 어머니의 감나무는 잔불에 쌓인 채 쓰러져 있었다.



엄마가 잠들어 있는 안채 또한 불길에 무너져 있었다. 불은 우리집 안채에서 시작된 것 같았다. 안채 어딘가에서 발화된 불길은 안채를 태우고 뒷마당 감나무에 옮겨 붙은 모양이다. 불이 붙은 감나무는 언덕쪽으로 쓰러져 있었다. 결국 우리집 안채에서 시작된 불은 감나무를 타고 언덕에 붙어 바람을 따라 곧장 춘삼이 아제네 집을 태운 것이었다.



우리집에서 난 불을 감나무가 언덕으로 이끌었다. 불은 곧장 춘삼이 아제네 집으로 향하였고, 정확히 종철을 태워죽였다. 나를 대신해 결국 불이 종철을 태워 죽인 셈인 것이다.



어찌 이리 공교로울 수 있는가? 허망한 가운데 나는 생각했다. 느닷없는 불이 종철을 죽인 것은 나를 위해서인가? 삼촌 복수를 위한 것인가?



이제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불이 죽였던, 내가 죽였던 종철의 죽음은 의미가 없다. 엄마가 내 사랑하는 엄마가 지금 저 불 속에 있을 것이다.



나는 허망한 눈물을 흘리며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 엄마~!!!!! 엄마~!!!!! 엄마~!!!! “

나는 목이 터져라 엄마를 불러댈 뿐이었다.



우지끈~ 꿍~

나의 부르짖음이 쓸데없다는 듯 안채의 마지막 기둥이 쓰러지며 지축을 울렸다.



저 무너져 내린 곳에 엄마가 있을 것이다.



“ 끄으으흑~!! “

나는 양손으로 마당의 흙을 움켜쥐며 몸부림 쳤다.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엄마까지 이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엄마의 삶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끝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 이은혜….

어떻게 살아온 삶이던가? 온통 고통뿐인 삶이었다. 행복은 찰나였고, 아픔은 억겁이었다.



나는 일어섰다. 불길을 견디지 못한 안채가 부엌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곧 엄마가 있는 안방도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는 무너져가는 안채로 발길을 옮겼다.

안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미 불길에 휩싸여버린 안방에 엄마가 살아 있을 리 만무하겠지만 그러기에 나는 걸어갔다. 나는 엄마와 같이 죽고 싶었다. 엄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살아가야 할 이유도 없고 의미도 없다.



한걸음씩 옮길 때 마다 엄마가 생각났다.

맨 먼저 엄마의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엄마가 살포시 미소 지으면 세상 모든 근심이 눈 녹듯 사라졌었다.

엄마와의 섹스가 떠올랐다. 엄마의 풍만한 가슴과 만월 같은 둔부… 그리고 최고의 열락을 안겨주던 그곳…. 오르가즘을 느낄 때 지르던 황활한 신음소리와 찡그린 인상….



그리고… 엄마의 눈물이 떠올랐다. 삼촌의 죽음과 할머니의 죽음…



1980년 초겨울 어느 날 밤 나는 엄마를 가슴에 품고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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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무님~ “

“ …. “

“ 상무님~! “

“ …. 어… 응? 아…이차장~ “

“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호호~ “



나는 창밖으로 향해 있던 의자를 돌려 이차장을 쳐다보았다.

“ 어..? 허허~ 내가 그랬나? 그래… 무슨 일로? “



이성희 차장… 올해 45세… 이른 나이에 돌싱이 된 직원으로 억척 같은 여인이다. 입사 때부터 계속 내 수족 역할을 한 친구다.

나는 곧 시선을 돌렸다. 이차장의 눈빛이 부담스러워서였다. 아내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쳐다보는 이차장의 눈빛이 변한 것을 느꼈다. 나를 남자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눈빛이 매번 부담스러워 눈길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기를 벌써 십 수년째다.



“ 지난번에 면접 본 신입사원 1차 합격자 명단이에요. 확인해보시고 전무님 결재 들어가시면 되겠습니다. “

“ 음… 알았어… 고생했어… “



봄볕이 따사롭다. 창밖으로 보이는 강변에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노란 개나리를 보며 35년전 과거로 떠난 정신을 이차장이 2015년 현재로 되돌려놨다.



1차 합격자가 100명이 조금 넘는다. 경기 불황으로 전년대비 50명이나 축소된 인원이다. 아마도 최종합격은 70명 내외가 될 것이다. 자동차부품 업계 1위인 우리 회사도 불황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아마도 내년이 마지막일 것이다. 이제 내 나이 55세… 아직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몸이지만 여기까지다. 미련은 없다. 열심히 일했고, 능력도 인정받았다.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오로지 성실과 실력으로 대기업 상무까지 올랐다. 더 이상의 아쉬움은 없었다. 노후도 대비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을 것이다.



100명이 넘는 인원을 일일이 다 살펴볼 수 는 없는 일이다. 대충 눈으로 훑어보고는 싸인해 버렸다. 아마도 이차장이 믿음직스럽게 가려냈을 것이다. 능력있는 친구이다. 박전무도 까다로운 성격은 아니다.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휴대폰이 갑자기 밝아졌다.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 응…. “

“ 언제쯤 퇴근하세요? “

“ 이제 곧 가야지… 그래… 준비는 다 됐니? “

“ 예… 뭐 이것저것 준비했는데…. 퇴근하셔서 아버지가 한번 봐주세요. “

“ 내가 뭐 볼꺼 있겠냐? 애미가 어련히 알아서 잘했을테지… 동희는? “

“ 네… 이제 막 잠들었어요. “

“ 그래… 곧 가마.. 집에서 보자. “



내일이 아내의 기일이다. 평소 같으면 집에서 제사를 지내나 이번 기일은 특별하다. 손자가 태어난 해라 아내의 묘를 직접 찾아 볼려고 한다.



이차장이 챙겨준 1차 신입사원 합격자 명단을 들고 박전무를 찾아갔다. 박전무는 나보다 7살이나 어리다. 회장 아들이다. 신입사원때부터 내 밑에서 일을 배웠고, 지금은 회사의 미래전략을 총괄지휘하고 있다.



“ 신입사원 1차 합격자명단입니다. 한번 보십시요. “

“ 아 네…고생하셨어요. 김상무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 뽑으셨을라구요. 하하~ “

웃음이 호기롭다. 태생이 특별해서인지 늘 여유가 있다. 그런 전무가 밉지도 그렇다고 싫지도 않다. 예전에는 그의 특별한 태생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그렇다. 그와 나는 그저 다른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 저녁에 약속 있으신가요? 없으면 술이나 한잔 하시겠습니까? “

“ 아…. 아이고.. 허허~ 이 일을 어쩌죠? 내일 집사람 기일이라…. 모처럼 청하셨는데 죄송합니다 “

“ 아.. 아니에요. 그렇군요. 어쩔 수 없죠 뭐… 그런데 상무님… 이제 새출발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이정도 하셨으면 아마 돌아가신 사모님께서도 이해할 듯 싶은데요… 하하하~ “

“ 허허~ 아이고… 별 말씀을… 이 나이에 무슨… 허허~ “



전무실을 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전무의 말이 맞을 수 있다. 벌써 아내가 곁을 떠난 지 15년째다. 새출발해도 흉 될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다.



퇴근 엘리베이트에서 이차장을 만났다.



“ 어머~ 상무님! 퇴근하시는 거예요? 퇴근이 좀 빠르시네요. 약속 있으신가 봐요? “

“ 어? 어… 내일이 집사람 기일이라서… “

호기심에 반짝거리던 이차장의 눈은 금새 풀이 죽어버렸다.



풀이 죽어버린 이차장의 눈이 애처롭다. 그리고 은은히 풍겨오는 향수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40대 중반임에도 쳐지지 않는 엉덩이가 꽤 탐스러웠다.

아랫도리 그 놈이 기지개를 켜 듯 솟구쳐 올랐다. 당황스러웠다. 실로 오랜만에 놈이 깨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놈은 이내 죽어버렸다. 놈의 기지개에 내가 응당 호응해줘야 하는데 왜 눈치없이 깨어나냐고 타박을 주니 죽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차장 때문에 발기했지만, 그것 뿐이었다. 오히려 15년전에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만 더욱 깊어졌다.







“ 아버님 오셨어요? “

문을 열고 들어서니 며느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어 아들녀석이 이제 갓 태어난 손주녀석을 안고 나타났다.



“ 오냐~ 장 보느라 고생했지? “

“ 고생은요… 한번 봐주세요. 제대로 봤는지… “

“ 그래… 뭐… 니가 어련히 알아서 잘 봤겠지… “



작년에 아들에게 시집 온 며느리는 요즘 애들 답지 않게 어른스럽다. 나는 그 점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그리고 풍기는 분위기와 인상이 죽은 아내를 똑 닮았다. 아들 또한 그 점이 좋아 청혼했다 하였다. 이래저래 우리 부자는 죽은 아내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백일을 갓 지난 손주 녀석은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자고 있는 손주 녀석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세상 모든 새끼들은 귀엽고 예쁘다. 여리디 여린 그 모습으로 가이없는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내 손주녀석뿐만이 아닐터인데, 이 녀석은 더욱 그러하다.

잠든 얼굴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 아내가 이 녀석을 봤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또다시 아내가 그리워졌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꼬박 네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거리다. 그나마 빠른 것이었다. 도로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아내가 묻힌 곳을 가려면 6시간 넘게 걸렸다.

나는 짧아진 그 시간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아내를 찾아가는 길은 짧아서 좋았으나, 떠나는 길은 짧아서 싫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점심때가 다 돼 도착했다. 아내의 묘에는 푸릇푸릇 봄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묘 위에 노란 민들레가 두어 송이 피어 있었다. 아들이 여기저기 잡풀을 뽑아내더니 민들레도 뽑으려고 하는 것을 나는 놔두라 하였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노란 민들레가 흡사 아내가 고갯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넓직한 비석을 닦고 자리를 깔았다. 그리고 음식을 꺼내었다. 며느리가 이것 저것 많이도 준비한 모양이다. 가져올 때는 여사로 보였는데 막상 펼치니 가짓수가 많았다. 기분이 좋았다.



“ 애미… 고생 많았다 “

“ 뭘요… 당연히 해야 되는 건데요… 뭐… “



그럭저럭 제사상이 완성되었다. 아들이 술을 따라 올리며 절을 하였다.



“그동안 잘 있었소? 당신 떠난지도 벌써 15년째요. 해마다 당신 찾아 오지만 오늘은 특별히 손님 한 사람을 더 데려왔소. 당신 손자… 김동희… 아들이오. 이쁘지요? 당신을 많이 닮았소.

당신도 보다시피 아들, 며느리… 다 잘있소. 나도… 잘…. 있소. 당신도 잘 지내고 있지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내 꼭 당신 찾아가리다. 기다리고 있어주오. 다른 남자 한눈 팔지 말고… 나도 한눈 팔지 않을 테니… 허허~ 그러니까 내 만나는 그날까지 그곳에서 행복하게 있으시오. “



제사를 마쳤다. 나는 아들네에게 먼저 차에 가 있으라고 하였다. 제주를 한잔 하고 싶었다.

아들네가 떠나고 난 후 나는 묘소 이곳 저곳을 다시 살펴보고는 술을 한잔 따라 묘에 뿌렸다. 그리고 다시 잔을 채워 입으로 털어 넣었다.

시원한 곡주 한잔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더니 빈 속을 찌릿하게 울렸다.

연거푸 한잔을 더 털어 넣었다. 얼굴이 불콰하니 달아 올랐다.



어디선가 나비가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노란 날개를 나풀거리는 나비는 아내 묘를 맴돌더니 비석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바로 내 옆이다. 겁도 없는 나비다. 나비의 살랑거리는 날갯짓을 보며 아내를 떠올렸다. 아내는 살아 생전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살포시 내 품을 찾아 들곤 했었다.



아내는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되던 해에 죽었다. 어느 날 밤 내 품에 안겨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한 가득 머금고 바람같이 가버렸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사망한 터라 아내의 죽음에 대한 경찰조사가 꽤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경찰은 은근히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부검을 진행하게 되었다.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살아 생전 아내는 너무나도 건강했기 때문에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가 안되기는 담당 부검의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검의는 말했다.

“ 아내분의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인데요.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심장근육으로 지금껏 살아왔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심장근육이 너무나도 약해져 있었고, 제 의학적 소견으로는 이미 30년전에 정지했어야 할 심장입니다. “



나는 물었다.

“ 아내는 죽을 때 고통스러웠나요? “

“ 정확하게는 말씀 드리지 못하지만, 보통 급성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은 심장 근육이 거의 괴사하거나 파열돼 있습니다. 그러면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데, 아내분의 심장은 근육만 약해져 있지 괴사나 파열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큰 통증은 없었을 것입니다. “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그러면… 됐어요. 고통없이 갔으면 됐어요. 30년도 훨씬 전에 갔었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나 때문에... 못갔으니… 고통없이 갔다면… 그걸로 됐어요 “





나비는 팔랑거리던 날개를 접고 앉아 내리쬐는 봄볕을 쪼이고 있었다.

나비가 내려 앉은 비석에 가로로 새긴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 사랑스런 아내였고, 현명했던 어머니.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

全 州 李 氏 恩 惠 之 墓





“ 엄마…

내랑 같이 있어줘서 고맙니데이…

내 아들 나조서 고맙고요.

또….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니데이...

진짜로…. 진짜로…. 고맙니데이…

엄마 때문에 내가 있었고, 엄마 때문에 행복했고, 또 지금도 행복하니더...

엄마 살아 생전 이 말 못해준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니더..



어머니… 사랑해요. “



나는 나비를 향해 말했다. 나비는 날아가지 않고 내 말을 알아 듣는 양 날개를 나풀거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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