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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같은 산행 - 1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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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26회 작성일 20-01-1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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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에서 물이 끓어오르자 사내가 사발에 물을 따랐다. 그녀가 보기엔 물이 오히려 통 속에 들어있을 때가 더욱 깨끗해 보였는데 주전자를 거쳐서 사발에 담긴 물에는 라면을 끓여먹고 남은 약간의 기름과 스프찌꺼기,라면조각 등이 떠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사발에 손가락을 넣고는 휘휘 돌리면서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의 행동이 물을 식히려고 하는 것인지 간단히 설겆이를 하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윽고 물이 좀 식자 사내는 꿀물이라도 마시듯이 사발을 쭉 들이켰다. 그녀가 눈쌀을 찌푸렸다.

"이 년아,너도 바나나 좋아하냐?" 난데없이 사내가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나나는 말야,옛날부터 자지 대용품이었어.응? 알지?" 사내가 손가락을 세워 꺼떡꺼떡 성교하는 흉내를 냈다. 그녀는 약간 시선을 돌려 그를 외면했다. "근데,실지로 바나나가 빠구리 치는데는 도움이 되질 않아요. 왜 그런지 알아? 바나나에 들어있는 칼륨때문에 그래. 바나나는 이게 말야, 말하자면 칼륨 덩어리야.응? 사과도 칼륨이 꽤 많이 들어있는데 그것보다 적어도 세배 이상은 더 들어있단 말이지." 사내가 침을 튀겨가며 얘기를 했다. 그녀는 정말 듣기 싫었지만 사내의 신경을 건드릴 수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고농도의 칼륨이 사람 몸 속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알아? 오줌으로 나트륨을 싸버려. 칼륨이 나트륨을 조절한단 말야. 다이어트엔 좋지,응? 근데 나트륨이 감소하면 중추신경이 유연해지거든. 그러니까 흥분이 잘 안된단 말야. 자지가 안 서요.알겠어? 참 희안하지." 사내가 말을 하면서 곁눈으로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는 완전히 고개를 돌려 움막 구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게다가 말야,바나나는 이렇게 좀 휘어져 있잖니.응? 너 바나나로 자위행위 해봤냐. 해봤으면 알겠지만 그거 되게 어렵단말야. 상처나기 딱 좋지. 오이처럼 똑바른게 좋지,휘어진건 영 아니란 말야." 거기서 그녀가 또다시 폭발했다. "알았으니까 그만 하구요. 예? 대체 문제가 뭐예요."

사내가 히히덕 거렸다. 그녀도 이젠 잘 알고 있었다. 문제를 내기 전에 이런 식으로 그녀의 성질을 돋구는게 사내의 수법이란걸 말이다. 이렇게 한번씩 성질을 내고 나면 그에 비례해 집중력도 떨어졌다. "난 궁금한 거야. 응? 생긴 모양도 그렇고 성분상으로도 빠구리를 저해하는 기능을 가진 과일이 왜 자지를 대표하는 과일이 된 건지 말야. 네 년은 안 궁금해? 궁금하지." "그게 문제예요?" "아냐,아냐. 그럴리가. 이 문제에는 답이 없어. 그 년, 성질도 급하네. 내 문제는 이거야. 자지가 실제로 바나나처럼 휘는 병이 있어. 음경만곡증이라고 그래. 웬만큼 휘면 그냥 봐줄만 해. 이게 극단적으로 심해지면 꺾쇠처럼 꺾이기도 하는데 말야,이러면 이거 골치 아프지. 씹질이 안되니까. 본적 없지? 아주 웃기게 생겼어. 이렇게 자지가 꺾이는 병 이름. 이게 뭔지 알아?" 그녀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내가 계속해서 이런 식의 문제를 낸다면 그녀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자지가 꺾이는 병이라니..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뭔데요?" "페이로니 병이라고 하지. 병을 발견한 사람 이름인데 그 사람 이발사였어. 재미있지?" 사내가 예의 독특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녀는 의기소침해지고 약간의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일을 없애 버리고 싶었다. 이 사내를 만난 후 일어난 모든 일들, 그녀의 통제를 벗어난 이 사건을 그녀의 기억에서 무화시켜 버리고 싶었다. 공기 중으로 증발된 수증기처럼, 처음으로, 제로로, 영으로 그 총량을 사라지게 해버리고 싶었다. "제가 낼 다음 문제는 간단해요." 그녀가 입을 열었다. "0을 발명한 사람들은 누구죠?"

그녀의 재빠른 역공에 사내가 난감하다는 듯이 코를 긁었다. "아라비아 사람들 아닌가..응? 그렇다면 너무 쉬운 문젠데." 사내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흠..아닌 모양이네. 글쎄다. 모르겠다. 누구냐?" 그녀가 한차례 짐을 덜었다. "유카탄의 마야 인디언들이었어요. 500년쯤 후에 인도인들이 재발견했고요,아라비아 인들이 전세계에 퍼뜨렸죠."

사내가 흐흥거리는 콧소리를 냈다. "넌 말야,이 년아. 점점 귀여워져. 알아? 처음에 너 봤을 땐 그냥 이쁜 년인줄 알았어. 응? 그냥 이쁜 년들 있잖아. 이쁘고 싸가지 없거나,이쁘고 멍청하거나,이쁘고 할 줄 아는게 없다거나 기타 등등,그냥 이쁜 년들. 그냥 이쁜 년들은 따먹기 좋아. 아주 쉽지. 네 년은 못 믿을지 모르겠지만 말야, 따먹는건 일종의 기술이야. 겁주고 얼러대고 따먹는 거지. 그런 식으로 하면 돼. 겁주고 얼러대고 따먹고, 다시 겁주고 얼러대고 따먹고. 완벽하게만 하면 덫에 걸린 토끼새끼들처럼 고 이쁜 년들 말야, 꼼짝도 못해. 그렇게 할 수 있어. 상처도 안나고 대부분 깨끗하게 끝나. 물론 이런게 모든 사내놈들한테 다 쉬운건 아냐. 만약 그렇다면 이쁜 년들 남아나질 않게." 사내가 손등으로 인중 근처를 비볐다. "근데,네 년은 말야, 그런 년들이랑 좀 달라. 하는 짓이 정말 귀여워. 머리도 좋고,점점 내 마음에 들어. 네 년은 한번 따먹고 말기가 너무 아까워. 옆에 두고 오래오래 즐기고 싶단 말이지." 그녀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끔찍해졌다. "지금 아저씨,나한테 사랑고백 하는건가요?"

"사랑고백? 아니야,이 년아." 사내가 웃었다. "너, 고양이가 생쥐한테 사랑고백 하디? 뱀이 쥐를 앞에 놓고 사랑고백해? 이 년아, 여길 잘 둘러봐. 여기가 어디 같애,응? 뭐하는데 같애? 여긴 사냥숙소야. 겨울내내 사냥을 하려고 내가 만든 임시거처라고. 물론 공무원들은 밀렵꾼이라고 하겠지만 말야,내 생각엔 난 말야, 진짜 사냥꾼이야. 내춰럴 본 헌터라구. 그리고 넌 이 년아,내 사냥감이야. 올 겨울에 내가 잡은 것 중에서 제일 맛난 것일거야." 그녀의 심장에서 피가 멎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싸늘하게 몸이 식어왔다.

"이번 문제는 씹물에 관한 거야. 좀 점잖은 말로 애액이란거 말야." 사내가 마치 강의를 하듯이 친절한 어조로 그녀에게 말을 시작했다. "너두 씹물이 나올거야. 얼마나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뭐 것두 좀 이따 만져보면 알겠지." 그가 실실거리면서 그녀를 훑어봤다. 정말 고양이나 뱀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없이 바닥을 바라보았다. "근데 말야,이 씹물이란거 참 이상하거든.이게 한가지가 아니야. 몇가지가 섞여있다구.이번 문제는 이거야. 그 종류를 대봐." 쉭쉭거리는 뱀 혓바닥처럼 사내의 문제가 그녀의 귓가를 널름거렸다.

정말 나는 사냥당하는 것일까..그녀는 아까부터 쫓기듯이 답답하고, 폐쇄공포증이 일어난 듯 불안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거 같았다. 그것이 사냥당하는 사냥감의 기분이었던 것이다. 포위당하고 조여오는 듯한 압박감,살아나야 한다는 절박함, 사내가 그녀에게 불러일으킨 그 본능적인 감각들이야말로 추적당하는 사냥감의 본능,바로 그것이었다. 사내는 사냥하고 그녀는 사냥당하고, 사내는 즐기고 그녀는 몸부림쳤던 것이다. 그녀는 이번 문제에도 답을 줄 수 없었다. "뭔데요?" 사내는 즐겁게 입을 열었다."씹물은 6가지야.보지 내 분비물.이건 질액이 젖산과 섞여있는거야. 시큼하겠지,응? 보지 벽 분비물.이건 거의 혈액과 같아. 맑고 별 냄새가 없어. 스켄선액.이건 네 오줌구멍 옆의 스켄선에서 나오지. 이건 내가 네 보지에서 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야. 정말 꼭 보고 싶다구. 궁금해.너두 길게 쌀 수 있을까.응? 바톨린선액. 이건 바톨린선에서 나오는 젖빛깔의 액체고,자궁경관액. 이건 좀 있다 내가 보지를 쑤셔줄 때 네가 오르가즘을 느끼면 자궁입구에서 나오는 거야. 내 좆물이 네 자궁으로 가는걸 도와주지. 어디보자.다섯가지했나? 나머지 하나는..." "그만 해."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그만 해. 아저씨가 아는 걸 인정할테니까 그만 하라구."

그는 한마리의 거미같았다.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는 거미종류 중 반 정도만이 거미줄을 치고 기다리고 나머지 거미들은 먹이를 잡기위해 직접 나서거나 잠복하여 공격한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그 얘기대로라면 사내는 전자에 속하는 거미였다. 음침한 구석에다 질기고 튼튼한 덫을 놓고는 미동도 하지 않은채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 그녀의 질문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내의 거미줄 쪽에서 배회하다가 걸리게 되면 숨어있던 곳에서부터 미끄러지듯 자신의 덫 위를 기어나와 비린내 나는 독침을 그녀의 신경중추에 박고는 효과적으로 전신을 마비시킬 것이다. 그녀는 사내가 보여주는 곤충의 이미지에서 다음 문제를 끌어냈다. 이런 식의 연상은 그녀가 매우 민감한 감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회생활에서 큰 도움이 되는 능력이었지만 특수한 경우 아주 큰 해가 되는 감각이기도 했다. "어떤 동물에 대한 얘기예요. 이 동물은 머리가 없어지면 교미 능력이 증진돼요. 이 놈을 잡아서 머리를 자르고 근처의 식도하 신경절을 제거하면 그 놈은 그 어떤 것과도 교미를 하려고 하지요. 연필이나 손가락과도요. 이 끔찍한 현상을 발견한 생물학자의 이름을 따서 뢰더의 교미라고 부르는 이 짓이 가능한 동물 이름이 뭔가요?" 사내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그 정적이 두려웠다. 그녀가 주먹을 두어번 쥐었다 폈을때 사내가 말을 꺼냈다. "그 동물 말야, 혹시 더듬이가 2개 있고 앞다리에 갈고리가 달렸나? 응? 육식성이고 날개는 없고 체절은 3개고." 그녀가 몸서리를 쳤다. 악몽같은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사내가 말을 이었다. "파리는 아닌거 같고, 모기도 아닌거 같고..귀뚜라미도 아닐테고.." 사내가 그녀에게 시선을 주었다. 뒤틀린 미소와 함께,최후의 궁지에 몰린 사냥감을 향해 독침을 쏘려는 거미의 섬뜩함을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사마귀구나.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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