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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같은 산행 - 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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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19회 작성일 20-01-1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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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 11부 사내의 대화에서 사마귀 날개가 없다고 한 것은 실수였습니다. 사마귀 날개 있습니다. 정정합니다.-



사내는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지만 그녀에게는 세상이 끝장나는 굉음과도 같은 소리였다. 그것은 6억 5천만년전에 지구를 강타한 지름 10킬로미터짜리 소행성이 터뜨려내는 괴성과도 같았다. 그 폭발에너지는 극도로 긴장한 그녀를 무자비하게 둘로 쪼개놓았고,40킬로미터의 창공까지 치솟아 10년 가까이 지표를 휩쓸었을 괴멸적인 먼지폭풍처럼 그녀의 망막을 뒤덮었다. 눈 앞이 캄캄해지면서 실신 직전에 이를만큼 충격적인 절망이 찾아왔다. 한달..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 기간이었다. 단 하루도,단 한시간도,단 1분이라도 사내가 원하는 방식대로는 그녀의 시간을 그에게 용납해 줄 수 없었다.

"끝났네." 사내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는 야비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온 몸에 자신이 나타낼 수 있는 모든 경멸을 끌어모아 사내에게 나타냈다. "자,시간은 많지만 너무 할 게 많아서 아주 바쁘다.안 그러냐?" 사내가 슬슬 몸을 흔들어댔다. "뭐부터 할까.음..좋아,이렇게 하자구. 먼저 옷을 다 벗어. 우선 네 년 몸매가 어떤가 좀 보고,그리고 내가 네 몸을 구석구석 다 본 다음에 넌 발가벗은 채로 내 자지를 빠는거야. 이쪽 옆에서 말야.응? 그럼 네 년이 빠는 동안 난 네 보지를 만지면서 어떤 상태인지 점검하도록 하지." 그녀는 뒷덜미로 식은 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사내의 위압감은 충분히 겪은 바가 있지만 그의 폭력성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려웠다. 오금이 저릴만큼 두려웠다. 그녀가 그의 어깨너머로 출구를 바라봤지만 사내를 지나 그곳까지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녀는 온 힘을 다 짜내어 말했다. "싫어요."

사내가 웃었다. "뭐라고?" 그녀가 다시 말했다. "싫어요. 싫다구요. 안 벗어요." 사내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도대체 뭐야,이 년아.지키지도 않을 약속 왜 했어.응? 내기는 왜 하자고 그런거야." 그녀가 숨을 골랐다. "안그랬으면,대체 나한테 어떤 선택이 있었겠어요.예? 그건 내가 그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수단이었다구요. 안 그래요? 아저씨,내가 어떻게 할 수 있었겠냐구요." 사내가 험악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네 년이 어떤 상황이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야,그건 내가 알바 아니야. 내기를 해서 졌으면 이 년아. 당연히 약속을 지켜야 하는거 아냐. 그것도 두번씩이나.응? 채무를 이행해. 빚을 갚으라고 이 년아." 그녀도 표독스럽게 쏘아붙였다. "빚이라구요,난 아저씨한테 빚진거 없어요. 그것도 빚이라고 우긴다면요,도박빚은 안 갚아도 된다고 법에 나와있다고 말해주고 싶군요." "법?" 사내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너 이 년아,법에 대해서 알기나 알아? 도박이라고.이 년아,형법에 따르면 우리는 도박한게 아냐. 재물로써 도박을 할 경우에만 도박죄에 걸리는거라구.네 년이 나랑 돈 주고 받았어?" 사내가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런..뭔가 몹시 잘못 건드린 모양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법이란 말에 흥분을 시작한 듯 싶었다. "이게 도박이라고 치자,이 년아.네 년이 말하는 도박빚 안 갚아도 된다는 조항은 민법조항이야.근데 말야,이 년아. 도박빚을 갚잖니? 그럼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조항도 있어. 746조야. 문구대로라면 내가 네 년을 따먹잖아,그럼 네 년은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는거야.알았어? 이 년아." 사내가 그녀를 움켜잡았다. 뼈라도 으스러뜨릴만큼 억센 힘이었다.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격렬한 반항을 시작했다. 사내가 난폭하게 그녀를 다뤘지만 그녀 역시 미친 듯이 다리와 손을 휘둘렀다. 몇번은 사내를 비껴가고 몇번은 사내를 맞췄다. 사내가 그녀의 질긴 방풍재킷의 목덜미를 잡자 그녀는 그의 손을 깨물었다. 사내가 다른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쳤으나 그녀는 물던 것을 놓지 않았다. 그는 주먹을 쥐고 그녀의 급소를 때릴 준비를 했다. 그러나 끝내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그동안 그녀의 이빨이 사내의 손을 파고들어 손등으로 핏물이 배어나왔다. 사내는 꼼짝도 않고 자신의 피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발작적인 반항이 잦아들고 흐느낌이 이어지면서 물던 것을 놓자 사내가 그녀의 옷에서 손을 떼었다. "피 봤네,망할 년." 사내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머리를 헝클어뜨린 채로 흐느끼면서 그를 바라봤다. "입맛 싹 버렸어,쌍년." 사내가 완전히 달라진 억양으로,돌변한 분위기를 풍기며 돌맹이를 씹어뱉듯 말을 뱉어냈다. "그래,너 이년..한번 해보자 이거지."



사내는 검게 그을린 커다란 숟가락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선반에 있던 종지에서 얼마간의 가루를 퍼 그 위에 올렸다. 사내는 그녀로부터 약간 몸을 틀어 돌아 앉더니 주머니에서 그와 어울리지 않을만큼 매우 세련되고 얇게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대리석처럼 청명한 가스라이터를 하나 꺼냈다. 에스티듀퐁이 제작한 엑스텐더 블랙이었다. 사내가 라이터 옆면의 버튼을 누르자 아무 소리도 없이 순식간에 헤드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사내가 그 강렬한 헤드를 숟가락에 대고 가루를 달구었다. 곧 가루가 녹아 끓으며 새파란 연기를 피워 올렸다. 그는 그 연기를 들이마셨다. 흥분에서 다소 진정된 그녀는 흐느낌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이게 다 뭐하는 짓인가..그녀의 눈에 가득 경멸이 담겼다. "마약하니?" 그가 라이터를 껐다. 수저는 그의 턱밑에서 아직도 연기를 뿜고 있었고 그는 눈을 감은채 그것을 흡입했다. 연기가 서서히 줄었다. 사내의 고개가 위로 들리고 턱의 하악근이 불끈 솟았다. 이빨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무는 것이 그녀의 눈에도 보였다. "마약이..아니야..이건." 마치 차돌끼리 갈리는 듯 탁하고 갈라진 목소리가,악문 이빨 사이로 구강과 비중격을 긁어내며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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