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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같은 산행 - 1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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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68회 작성일 20-01-1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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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수저를 떨어뜨렸고 수저 안에 조금 남아있던 용액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상처입은 들개처럼 사내가 바닥을 움켜쥐고 몸을 둥글게 엎드렸다. 압축펌프에 바람이 새는 소리처럼 거친 신음이 길게,또 길게 반복해서 사내로부터 흘러나왔다.

그녀는 느닷없는 상황변화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발작인가,이 인간..그녀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사내의 끔찍한 고통이 시작되었다. 온 몸의 근육이 비틀리고 근육에 매달린 뼈마디가 뒤틀려 제각기 저 나름대로의 파장으로 서로를 갉아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늑골과 흉골이 척주에서 이탈되어 톱니 엇갈리듯 삐그덕 대고 그럴 때마다 사내는,눈덮힌 들판 한 가운데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늑대가 마지막으로 울부짖듯 끔찍한 비명을 쏘아올렸다. 경추와 흉추가 파도를 타듯 울렁거렸다. 상체와 하체의 모든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돌처럼 굳으며 펄스처럼 맥박쳤다. 등쪽의 광배근이 얼마나 돌출되었는지 척추를 따라 이어진 홈이 마치 도랑처럼 파여들어간 것이 보였다. 33개의 척추뼈가 저마다 풀어진 볼트처럼 덜그럭 거리며 사내의 몸을 기괴하게 요동치도록 만들었다. 이렇듯 제멋대로 뼈가 이탈하려는 것은 골근육의 파열적인 경련 때문이었는데 평소에 단련이 잘된 근육일수록 경련의 힘도 더욱 거셀 것이었다.

그녀가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이 미친 놈아. 대체 뭘 먹은거야."

사내의 한숨한숨이 모두 고통의 압축증기였다. 숨을 쉬는 건지 폐부가 찢어져라 폭발하는 세포를 긁어 뱉어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내의 온몸에 물결치듯 잔 경련이 일어났다.

"이건 비듬약이야." 잠시 고통이 사그러들었는지 사내가 말을 이었다. "머릿 속이,간질간질 거릴 때가 있지,어. 손을 넣어서,뇌를 긁고 싶을때 말야.뇌에 낀,그 비듬을,긁어내고 싶을때,어,그때 쓰는 약이지.." 사내가 한숨에 한 단어씩 고통스럽게 말을 뱉어냈다. 그가 바닥을 다시 쓸어잡았다. 바닥에 깔린 멧돼지 가죽이 그의 손에 구겨졌다. "너 이년,똑똑한척 하니까,알지도 모르겠네.이 년아,이건,스트리크닌이야.응? 거기에,내가 아는 비율로,어,포도씨를 갈아넣은거지.."

그녀도 물론 스트리크닌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농약으로 사용하는 무색의 알칼로이드 결정. 60미리그램 정도면 치사량에 이르는,무서운 독극물이고 생명체에 근육발작과 질식을 유발한다. 그녀는 사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대략 알 수 있을것 같았다.사내가 섞었다는 포도씨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녀 눈에 보이는 사내의 증상은,척수나 뇌에 있는 클로라이드 채널의 수용체가 스트리크닌에 의해 블로킹 당해 신경세포들이 괴사하는 현상처럼 보였다. 단지 그것 뿐이라면 사내는 죽을 것이다.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말을 하는 이 사내의 생명력은 뭔가.

"이 년아.이건,마약이 아냐.그건 판단력을,흐리게 하지. 이건,죽을거 같은,고통을 가져와. 그리고,그 고통이 끝나면. 끝나면 말야,끔찍한 각성효과가 생겨." 다시금 사내에게 고통이 찾아왔다. 고물이 된 폐차처럼 주저앉은 그의 몸이 단속적으로 비틀리고 있었다. 목에서,이마에서,손에서,팔뚝에서 시퍼런 핏줄이 지렁이처럼 튀어나왔다. 아마도 온 몸의 핏줄이 저렇게 됐으리라. 동맥이 팽창하여 고통에 비명지르는 세포들 하나하나에 조금이라도 산소를 불어넣으려 몸부림쳤다. 근육과 근육이 마찰하고 열을 발생시켜 익어버린 고기처럼 붉게 색을 내기 시작했다. 목덜미 사이에서 김이 오르고 전신의 땀샘과 피지샘에서는 체액과 기름을 뽑아올려 사내의 피부를 끈적하게 절여놓았다. 지킬박사가 하이드로 변할 때 이랬을까. 변신이란 말이 떠오르자 그녀는 그것외에 사내가 벌이고 있는 이 기괴한 육체의 변화를 설명할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 신화를 변신이란 측면에서 서술했던 오비디우스부터,늑대인간을 비롯한 숱한 괴담과,헐크나 그밖의 변신영웅들을 그린 미국의 코믹스,그리고 최근에 봤던 일본만화 드래곤 볼까지,그녀는 변신에 관한 숱한 이야기를 읽어봤지만 이렇게 눈 앞에서 보게 될줄은 몰랐다. 그것은 신기한 것도 아니고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작은 움막 안이 고통의 열기와 죽음 직전의 괴음으로 가득 차,저 지하 뜨거운 맨틀의 심장부로,죄악의 영혼이 들끓는다는 지옥 불길의 심원으로,지표를 붕괴시키며 끝없이 가라앉을 것처럼 여겨졌다.

"여기 앉아서도,바깥에 눈송이가 앉는 소리가 들려. 그리구 이게 끝나면,머리가 맑아지는데,그런데도 내가 아닌 것처럼,아니,그 어느 때보다도 진짜로 나 인것처럼,내 본능을 훤히 들여다보면서,나는 나를 이끌지.아주 난폭하게." 신음소리가 잦아들면서 말이 아까보다는 편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사내가 쥔 주먹이 핏물이 터져나올거처럼 붉게 변하며 우두둑 거리는 손뼈의 압축소리가 들렸다. 사내의 목소리가 변해 있었다. 그의 몸에 집중되었던 곽란이 성대에 일시적인 멍울을 만들어 음성의 진동수를 변화시킨 모양이었다. 거칠고 음산하고 위험스런 느낌으로 쉬어 있었다.

"난 말야.가끔씩 사냥하기 전에,이 냄새를 맡곤 해. 네 년이 깔고 앉은 멧돼지 가죽,이 놈은 총으로 잡은게 아냐. 손도끼 하나만 들고 맨손으로 잡았어." 사내가 간헐적인 경련을 멈추었다. 숙인 어깨와 머리에서 그녀는 매우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시안화물같은 독극물의 냄새,더 나아가 빌딩을 날려버리기 위해 잔뜩 쌓아놓은 컴포지션4처럼 아주 위험스런 죽음의 냄새였다. 그가 천천히 숙인 머리를 쳐들며 그녀를 노려보았을때,사내의 눈을 정면으로 본 그 순간 그녀는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다.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영원히 저주받은 무저갱에서,오직 그녀만을 탐하고 그녀만을 사냥하기 위해 사내의 영혼을 타고 기어나온 아스모데우스. 즉 격노와 정욕의 악마였다.

"지금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알아. 네 심장소리야." 사내의 흰자위엔 흰색이 없었다. 그물같은 모세혈관이 모두 터져 짙은 핏물의 적색으로 물든 흰자위에, 확대된 동공이 마치 니스를 발라놓은 듯이 번들거리며 고통과 공포의 또다른 차원과 연결된 시커먼 심연을 드러내어 그녀를 대면하였다. 사내의 이마에 팬 주름은 칼로 그은 듯이 선연했는데 마루와 골이 홍수가 진 계곡만큼이나 깊어 보였다. 근육의 한계까지 몸의 관절이 비틀리고 이탈된 까닭에 그의 신체가 한층 늘어나 버린 것을 한눈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아마도 지금의 사내라면 올림픽에 출전한 체조선수만큼이나 유연해 졌을 것이다. 또한 사내는 비정상적으로 분출된 아드레날린 덕분에 근육의 부피가 폭발적으로 불어나 있었다. 터질 듯이 끼어있는 옷을 보자니 이건 마치 한 마리의 회색곰이 앉아 있는 듯 했다. 그녀는 턱이 떨려왔다.

사내가 벽에 꽂혀있던 빅토리녹스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뽑아 화로 속에 꽂아 넣었다. "이 년아,이제 다 필요없어. 다시는 못쓰게 보지를 지져버릴거야. 반항해도 좋아. 그땐 먼저 네년 얼굴부터 지질거야." 스산한 쉰 목소리와 변해버린 덩치, 지금까지의 사내이면서 또한 전혀 다른 사내가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도 계속 반항하면 네 보지로 포를 뜰거야. 너 아까 이 칼로 수술도 가능하다고 그랬지.잘 됐네. 메스로도 쓸 수 있다면 횟칼로 쓰지 못할거 없지. 이 년아, 네 보지로 육회 한번 먹어보자. 싱싱하겠네. 아직까진 살아 있으니까." 그녀는 그 말의 진실성을 느꼈다. 사내는 진짜로 자신의 민감한 조직을 저며내어 먹을 것이다. 이건 위협이 아니었다. 이제까지의 사내가 그저 야만스럽고 난폭한 인간이었다면 지금의 사내는 뭐랄까..야만과 난폭이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말하자면 그에게서는 이제 인격을 찾아볼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전쟁의 역사를 통해 환각제나 흥분제를 써서 전투력을 고양시키려던 무수한 사례를 알고 있었다. 멀게는 잉카족들이 코카잎을 씹으며 전쟁을 치룬 예부터, 가깝게는 2차세계대전 때 일본군들이 메탐페타민을 복용했던 사실이나 독일군이 암페타민 페르비타인을 사용하여 비정상적인 전투력을 보여준 예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복용한 전쟁의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도 알고 있었다. 약물에 취한 그들은 희생자들이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나 되는 듯이 조각을 내 버렸던 것이다. 만주지역의 관동군은 여성의 피부를 벗겨 전등갓을 만들어 씌우곤 했다는 비공식적인 보고서도 있었다. 피부를 통해 비치는 빛이 아름답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사내는 마치 원시시대 사냥꾼들이 그랬던것처럼,그리고 최근의 냉혈적인 군대조직이 그랬던것처럼 사냥 전에 자아를 제거하고 무아의 경지에서 피비린내에 도취된 살육을 즐기는 의식을 해 온 것이 분명했다. 악몽같은 일이지만 불행하게도 이번에 선택된 그의 사냥감은 그녀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 말이 맞았다. 딱 아는 만큼 무서운 법이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공포에 그녀의 명민한 두뇌는 사고를 멈추었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다 할께요,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께요." "늦었어,이년아." 화로에 꽂아넣은 마운티너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운티너 핸들의 재질은 알비스에서 생산한 셀리돌이었는데 주성분인 셀룰로즈 아세테이트부틸레이트는 융점이 180도 정도로 비교적 낮은 편이어서 금새 까맣게 그을리며 조직이 연화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지나친 두려움이 그녀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것이다. 사내가 기포가 발생하기 시작한 마운티너의 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고 칼을 빼들었다. 살이 타는듯한 노린내가 풍겨왔다. 그녀는 넋이 나갔다.

"다리벌려,이년아." 그녀가 사내의 다리를 붙잡고 엎드렸다. "아저씨,제발요.시키는대로 다할께요." 사내가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안벌리면 여기부터 지진다." 사내가 든 시뻘건 칼이 그녀의 얼굴을 겨눴다.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안돼요,아저씨.하라는 대로 다 할께요." 사내가 엎드려 있는 그녀의 머리쪽을 향해 칼을 내리꽂았다.칼은 그녀의 귀 옆을 지나 움막 바닥에 자루까지 꽂혔다.칼의 열기에 꽂힌 자리 주변의 가죽이 빨갛게 연소되어 재로 변해갔다. 사내가 칼에서 손을 떼자 말랑말랑해진 마운티너의 손잡이에 사내의 손자국이 움푹 패인 것이 보였다. "한번만 말할거야.옷 다벗어.실오라기 하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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