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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같은 산행 - 2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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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80회 작성일 20-01-1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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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의 말이 맞았다. 바위에 새긴 이름처럼,감광유제인 할로겐화은에 노출되어 포획된 이미지처럼,그 책의 이름은 그녀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사내의 말처럼 그가 번역한 책이 맞다면,그녀는 반드시 그를 잡아낼 것이었다. 사내의 이름으로 시작하여,그의 모든 경력과 과거의 행적을 조사하여 폭로하고,그의 현재를 추적하여 체포할 것이었으며,그리하여 그의 미래를 사상의 지평선 너머로 소실시켜 버릴 작정이었다. 그녀가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만 있다면 말이었다.

내연기관의 크랭크 축이 돌아가는 것처럼 정확하고도 강력한 펌핑동작을 반복하면서도 사내의 붉은 눈은 물샐틈 없이 그녀를 감시했다. 그녀의 사소한 표정변화,감정의 기복,쾌락의 요동,움찔거리는 작은 몸동작 등을 쉴새없이 체크하고 그 이면에 내포된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밀밭을 휩쓸어가는 돌풍처럼 자신을 지져대는 자극에 휘말리면서도,타고난 예감능력으로 사내가 이전과는 다르게 변했음을 감지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변화였다. 아무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녀를 움켜잡고 있는 사내의 악력과 손뼉을 치듯 철벅거리며 거세게 음부에 부딪혀오는 사내의 하체에서 은밀한 살기가 뚝뚝 떨어졌다.

이 놈은 나를 죽일거야..길고 긴 고행 끝에 전광같은 깨달음을 얻듯이 그녀는 짙푸른 전율 속에서 더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내의 확고한 살해의지를 깨달았다. 애초 사내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그의 수정된 목적을 알아낸 순간 그녀는 사내가 어떤 일을 벌일지 또렷하게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그녀를 죽일 것이고,죽이되 쉽게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소를 잡으면 머리부터 꼬리까지 모든 부위의 살을 발라내고 뼈까지 우려내 먹고도 모자라서 내장마저 토막내 막창구이를 해먹는 인간처럼,사내도 그녀를 통해 해볼 수 있는 모든 짓을 다 해보고,짜낼 수 있는 모든 쾌락을 다 짜낸 연후에 그녀를 죽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내가 올무도 사용하리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녀가 너무도 무서워하던 그것,늑대의 이빨을 닮은 그 칼날의 올무. 다치건 말건,상하건 말건 그녀는 곧 소모될 1회용 건전지였고 다 닳아버린 후엔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었다.

지금이야 사내의 위협 말고는 실제로 그녀에게 사용된 구속도구가 아무 것도 없지만,사내가 칼날이 박힌 그 올무를 그녀에게 얽는다면 그 순간이 그녀에겐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녀는 그에게 장난감처럼 농락당하다가 천천히 죽어갈 것이다. 그래도 그녀에게 기회가 있다면 움직일 수 있는 지금,사내가 섹스를 하는 지금뿐이었다. 잠시후 사내가 섹스를 마치고 나면 바로 올무를 사용할 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사내는 효율적인 사냥꾼이었고 사냥감은 묶어놓는 것이 가장 안전하니까.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생존본능으로 들끓는 것이 느껴졌다. 이전까지 그녀는 막연히 살아나간다는 것을 전제로 모든 걸 판단했었다. 자신만의 희망이었지만 사내의 말을 따르면 살아나갈 수 있겠지라는 가정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그녀는 확실히 죽는 것이다.

그녀는 얼음처럼 식어갔다. 이건 좋지않아..그녀의 본능이 경고를 울려댔다. 동물같은 감각을 가진 사내는 금새 그녀의 변화를 눈치챌 것이다. 사내가 원하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함락이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그것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이제는 그것을 주어야했다. 적어도 주는 척이라도 해야했다. 달변의 소피스트가 그를 둘러싼 청중을 사로잡듯 그녀 역시 실감나는 연기로 사내를 속여 넘겨야 하는 것이었다. 신들린 듯한 오르가즘의 연기,그것으로 말이다. 너무 쉬워도 안되고 너무 힘들게 해도 안되고,그러면서도 사내를 만족시켜야 하고,그렇게 함으로써 얻어낸 시간 안에 그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그녀의 과제였다.

잠시도 쉬지않고 그녀를 쑤시는 둔탁한 성기를 느끼면서 살며시 눈을 떠 사내를 쳐다 보았을때,그녀는 성능의 한계까지 가속페달을 밟아댄 트럭에 정면으로 치이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한번의 눈 깜박임도 없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사내의 붉은 눈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느님을 찾았다. 사내가 드러낸 법랑질의 이빨 사이에는,어느새 뽑았는지 바닥에 꽂아놓았었던 빅토리녹스의 칼날이 물려 있었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채 눈을 다시 감았다.



그녀는 그에게서 배운 것을 써먹기로 했다. 그가 일으키는 질벽 자극에 맞춰 그녀는 비강에서 새어나오는 약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감창은 애절한 발라드처럼 투명하고 아침 호수에서 피어오른 물안개처럼 희미했다. 그것은 조용하고 감미로운 흐느낌이었으며 그에게 전달하려는 복종심의 표현이었다.

그녀는 그가 찌르는 타이밍에 리듬을 실어 적절히 질을 수축시키려고 애를 썼다. 적극적으로 다리를 꺾어 벌리면서,묵직하게 그녀의 질을 채우고 들어오는 성기를 좀더 깊게,그리고 좀더 강하게 조여잡았다. 사내가 성난 코뿔소처럼 그녀의 비소를 들이받는 액션이라면,그녀는 그 충격에너지를 스펀지처럼 흡수해 혈관 가득 캐러멜같은 쾌락을 분출시켜주는 리액션이었다. 다채로운 무늬의 모시조개가 외투막을 수축시켜 물을 끌어들이듯이,그녀도 부드러운 살 속 깊숙히 사내의 성기를 포옹하고 풀어주고 다시 끌어안았다. 사내가 칼을 문 이빨 사이로 녹슨 미닫이문을 닫을 때 나는 소리처럼 그르렁대는 신음소리를 흘렸다. 그녀는 초미립자 구조의 에멀젼이 도포된 고감도 필름같았다. 사내가 시도하는 섹스의 콘트라스트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고,성기로부터 다이나믹하게 솟아오르는 촉감의 흐름을 순간동작으로 포착하여 즐거움을 투척했다.

사내의 펌핑이 빨라졌다. 모데라토에서 알레그로로,알레그로에서 프레스토로 점차 속도가 올라갔다. 송곳망치로 기둥에 홈을 파듯 사내는 격렬하게 그녀를 파내며 나긋나긋한 음부에 사갈을 틀었다. 사내는 흥분하고 미쳐갔다. 아지랑이같이 퍼지는 그녀의 신음은 이제 텐션코드처럼 긴장을 유발하며,그들이 나누는 섹스의 배경에,그치지 않는 음악처럼 극적으로 깔렸다. 그녀는 사내의 빨라진 속도를 따라잡기가 어려웠지만 대신 자신의 구멍에 블랙홀처럼 강한 흡인력을 만들어 일정한 강도의 압력을 유지시켰다. 그것은 비단같은 감촉으로 썩션기처럼 사내의 성기를 빨아주는 또하나의 입이었다.

사내가 프레스티시모로 속도를 올렸다. 그녀는 비명을 터뜨렸다. 그녀의 연약한 비소가,끓인 우유를 섞어 만든 앙그레즈 크림처럼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유성처럼 긴 꼬리를 끌며 소프라노 음색의 신음섞인 비명을 지르면서,그녀는 마치 윗몸일으키기를 하려는 사람처럼 팔배개를 했던 팔로 머리를 감싸안았다. 후두골만으로 체중을 지탱하며 목과 등을,둥글게 휘어 바닥에서 떼어낸 그녀는,그 자세로 몸을 경직시킨 채 사내의 공격을 받아냈다. 사내의 거친 숨소리와 짐승같은 신음이 움막 안을 가득 채웠다. 사내는 신경세포 하나하나,근육세포 하나하나가 마치 메뚜기처럼 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피가 분출하고,아니 거꾸로 자신의 음경을 통해 템퍼링된 초컬릿이 피와 섞여 밀려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달콤하고 짜릿하고,엘에스디 같은 메이저 사이키델릭스를 통째로 들이마시는 듯한 절정의 쾌락이었다. 사내가 드디어 사정에 도달했다. 그는 첫 사정과 마찬가지로 고래의 울음같은 긴 신음을 내뿜으며 깊은 만족감에 빠져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그녀가 눈을 떴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되는 마지막 기회. 급하게 그녀의 시선이 바닥을 훑었다. 불에 달궈진 화로가 눈에 띄었다. 오직 그것 하나 뿐이었다. 그녀가 몸을 틀어 삼발이처럼 서있는 화로의 다리 하나를 움켜잡았다. 뜨겁게 달궈져 있는 얇은 쇠붙이가 그녀의 손바닥을 한줄로 지지며 말할 수 없이 끔찍한 고통과 냄새를 안겨주었다. 부드러운 손바닥에는 그녀의 인생을 바꿀 손금 하나가 낙인처럼 찍혔다. 그가 이상한 낌새에 눈을 뜨는 순간,그녀가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화로를 휘둘렀다. 묵직한 화로가 무서운 가속도를 붙이며 날카로운 타원의 궤적을 남기고 사내의 협골을 강타했다. 화로 속의 불붙은 숯들이 마치 폭죽처럼 사내의 옆얼굴에서 폭발하여 방사형 불꽃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사내는 강력한 충격을 먹고 옆으로 쓰러지며 물고 있던 칼을 놓쳤다. 빅토리녹스가 바닥을 굴러 구석에 처박혔다. 사내는 곧 일어나기 위해 몸을 바둥거렸다. 그녀는 너무 뜨거운 나머지 화로를 놓쳤으나 사내의 움직임을 보고는 폐부를 찢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화로 다리를 잡았다. 두번째 손금이 약간 엇갈린 방향으로 그녀의 손바닥을 태웠다. 새로운 손금은 그녀의 생명선을 지져 선명하고 길게 연장시켜 놓았다. 이번엔 도끼를 휘두르듯이 위에서 아래로,막 몸을 일으키려는 사내의 두정골을 내리갈겼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치명적인 타격이 사내에게 가해졌다. 사내가 급소를 얻어맞은 개처럼 몸을 팽그르르 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움막 바닥에 흩어진 숯덩이들이 곳곳에서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움막 안은 점점 연기로 가득찼고 여기저기서 붉은 불꽃이 너울거리는 것이 보였다. 사내가 죽었는지,아니면 기절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그녀는 사내를 움막 밖으로 끌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몇가지 그녀의 옷과 신발을 집어들고 그녀는 발가벗은 채 움막 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은 환한 대낮이었고 눈은 이미 그쳐 있었다. 하얀 눈밭에 그녀의 그림같은 나체가 눈부시게 빛났다. 영하의 온도였으나 그녀는 추운 줄도 몰랐다. 그녀가 서있는 산등성이에서 기슭 쪽이 내려다 보였다. 그녀가 차가운 눈 속에 화상을 입은 쓰라린 손을 파묻었다. 고통이 좀 줄어들었다. 조금 더 이대로 있고 싶지만 등 뒤가 따가왔다. 사내가 지금이라도 당장 움막 밖으로 뛰쳐 나올거 같았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대충 옷을 꿰어 입었고 우리에서 풀려난 사슴처럼 산 밑으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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