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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같은 산행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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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511회 작성일 20-01-1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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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 나가기 위해 마을 종점에서 출발시간을 기다리던 성촌운수 소속의 버스기사는,이 촌구석에선 처음 보는 굉장한 미녀 한명이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고는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어디서 급히 오는 모양으로,머리도 좀 헝클어지고,입고 있는 등산복도 더러웠지만 그것이 그녀의 타고난 미모를 가리지는 못했다. 그녀의 긴 다리가 버스계단을 한칸 성큼 올라서서는,착 가라앉은 조용한 목소리로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또 읍내로 나가면 도시로 갈 수 있는 차편이 있는지를 기사에게 물었다. 기사는 묻는 말에 친절히 답을 해주고는,그녀가 자리에 앉자 아직 출발시간이 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버스를 출발시켰다. 버스 한 대를 통째로 대절한 듯 텅빈 차내에 오직 그녀 혼자만이 댕그러니 앉아있었지만,기사는 마치 장날 읍내로 나가는 버스처럼 사람들로 버글대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도 봄은 멀었지만,버스 안에는 마을의 자랑거리인 홍매화 향기가 노랫가락처럼 넘실대는 것 같았다. 백미러를 통해서 언뜻언뜻 보이는 그녀는,나이답지 않게 사려깊고 차분해 보였는데 뭔가 중요한 생각에 골똘히 잠겨 있는것 같았다.

사실 그녀는 소리를 죽여 울고 있었다. 슬프지도 않은데 이상하게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 그 놈은 죽었을까,살았을까. 두가지 경우 모두 끔찍했다. 죽었다면 자신은 살인을 한 셈이었고 살았다면..그건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산을 달려 내려오면서 돌아본 움막은 화재로 전소되고 있었다. 그녀가 내리친 타격에 죽지 않았더라도 아마 그 불길 속에서 질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죽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그녀로서는 좀더 편안했다. 사망원인이야 그녀가 제공한 것이지만 어쨌든 직접 죽인 것은 아닌 셈이었으니까 말이다. 신고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신고를 하게 되면 한동안 이곳에 붙잡혀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녀는 그게 내키지 않았다. 되도록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놈의 생사는 반드시 확인해야 할 문제였다. 그러지 않고서 그녀는 영원히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없을 것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직도 간간이 눈물이 나오긴 했지만 이제는 많이 진정되었다. 자신이 갇혀 있었던 산이 저 멀리 느린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신고를 해서 이 사건이 백일하에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그와 그녀 사이에 일어났던 진짜 일들,그 미묘한 감정들과 순간순간 용출했던 두려움과 폭력의 커뮤니케이션,육체적인 교감과 탈선,그와 그녀가 주고 받았던 잊을 수 없는 언행들,그 자그마한 말투에서 느껴졌던 마천루같은 가시장벽들은 아무도 알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성관계는 모든 행동에 있어 중심점이 되고 뿐만아니라 비밀에 쌓여진 모든 의미가 된다는,너무도 의미심장한 격언이 떠올랐다. 누구였지..쇼펜하우어였던가. 그녀는 다시 산을 쳐다보았다. 사내의 붉었던 안구처럼,차갑게 얼어붙어 일찍 떨어지려는 겨울해가 이제 산 너머에서 붉은 햇살을 내뿜으려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지옥같은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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